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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로 국가를 의미하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는 ‘공공재’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함께 참여해서 만들었다는 취지에서 ‘공익’ 또는 ‘복리’라는 뜻도 가진다. 이 개념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원칙으로 삼고 추구하고 있는 국가와 정치의 목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국가와 정치의 표상이 바로 이 개념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국가의 이념을 정립하기 위한 투쟁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력을 통제하고 다수의 구성원이 국가라는 ‘공공재’를 나눠 가지는 문제에 대해 정교하게 발전시킨 것이 서구의 정치철학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도 이런 정치철학의 산물이다. ‘김씨 왕조’라고 비아냥거리면서 북한의 독재체제를 비판하는 까닭도, 북방한계선(NLL)을 영토라고 규정하고 “피와 죽음으로” 지키고자 하는 까닭도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독재체제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보수의 정체성이라면, 그 이념의 보편성에 동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보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특수상황’을 강조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방식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억압한다는 역설을 낳는다. 물론 이 역설을 정당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과거 한국의 보수가 채택한 방법은 끊임없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것이다. 국가라는 ‘공공재’가 절대적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은 일시적으로 유보할 수 있다는 것이 이른바 ‘안보논리’의 핵심이다.
‘공공재’가 위기에 처했다면 그것을 나누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인데, 과거에 보수가 즐겨 차용했던 선동의 논리가 여기에 근거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북한의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득은 공론의 자유를 제한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것에 있다. 게다가 ‘종북 척결’이라는 위생학적 용어법은 현재를 ‘병든 상태’로 규정함으로써 구성원 전체를 위해 소수를 배제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필수적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이 불거지고, 그에 대한 검찰 조사 내용이 일정하게 공개된 후에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정작 당사자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례적으로 성명까지 발표하면서 국정원이 하고 싶었던 말은 “국가를 위해” 댓글도 달고 회의록도 공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힘을 얻으려면 지난 선거기간에 국가라는 ‘공공재’를 유지하는 데 심각한 위기가 조성됐다는 사실이 증명돼야 한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꺼내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기에 과연 적절한 것일까? 그 회의록에 평소에 주장해온 ‘종북세력의 실체’ 따위가 밝혀져 있었던가? 회의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온 문재인 의원은 자연스럽게 ‘종북세력’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했던 그 수많은 유권자들은 ‘종북세력’인가, 아니면 북한의 선거 개입에 놀아난 허수아비들이란 말인가? 과연 국정원은 이런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만일 국정원의 주장이 옳다면,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이루어온 모든 성취는 북한에 의해 심각하게 훼손된 꼴이 된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국정원의 주장이 너무 과장돼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만히 뜯어보면 황당한 논리지만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개의 국가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국가라는 ‘공공재’를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것이 확장되면 ‘자기 편의 것’이 되는 셈인데, 자칭 진보정권 역시 이런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두 개의 국가를 하나로 만드는 것을 세대론으로 돌려서 말하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화해이고, 지역론으로 표현하면 영·호남 통합이다. 세대와 지역 통합에 힘을 실어준 논리는 선진국론과 정상국가론이었다. 산업화 세대가 추구한 선진국과 민주화 세대가 꿈꾼 정상국가가 하나로 만나는 것이 이른바 통합국가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지난 선거에서 통합의 과제를 앞장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서도 정작 집권 이후에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보수의 보편가치를 구현할 하나의 국가를 완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한국의 보수는 시대착오적인 분리주의를 다시 도입하고 있다. 이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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