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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었다. 한 명 두 명 그가 죽어 나갔다. 자동차가 만들고 싶어졌다. 공장 안에서 파업이 길어질수록 그 자동차 한 대를 꼭 만들고 싶었다. 회사 망한다는 소리가 억울했고 옥쇄파업이 생산시설을 부수는 파업으로 보도될 땐 숨이 턱턱 막혔다. 2009년 8월 결국 그 자동차 한 대를 만들지 못하고 공장에서 끌려 나왔다. 그는 또 죽어갔다. 그를 잊고 싶었고 알고 싶지 않았다. 현실이 아니었으면 어떨까 상상했다. 만약에 파업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다시 그 시기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 모든 상황은 사라지는 것일까. 상상 속에서 밤길을 헤맸고 천막을 뚫고 들이닥친 빗물을 맞아야 아침 길이 열렸다. 입안이 텁텁했고 물병 찾아 몸을 돌리면 그가 있었다. 까만 밤 하얀 촛불을 벗 삼아 휘고 꺾이고 눌어붙도록 그는 어떤 말을 뱉어냈지만 동글동글 촛농처럼 굳었고 바닥에 굴러다녔다. 천연덕스럽게 천막을 걷고 냉기를 털었다. 국밥 한 그릇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허기를 달랬다. 바닥에 걸터앉아 달리는 자동차를 보다 잊고 있던 그 차 한 대가 생각났다. 다시 만들고 싶어졌고 그에게 자랑하고 싶어지자 마음까지 설레었다.

해고자들이 만드는 자동차. 근사할 것 같았다. 무거운 이미지도 벗겨내고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일석이조였다. 바닥에서 번데기처럼 한뎃잠을 자면서도 실 뽑는 누에라 생각했고 눈 맞으며 오돌오돌 떨면서도 봄볕 아래 날아다니는 나비라 최면도 걸었다. 가뭇하게 돌 위에서 잠들면서도 웃음기로 입이 돌아갔다. 마음이 바빠졌다. 해고자들이 손에 연장을 쥐고 예술가들과 착한 시민들의 도움으로 그 차 한 대를 뚝딱뚝딱 만들었다. 공장에서 그 꿈을 꾼 지 꼬박 5년. 2013년 6월이었다. ‘H-20000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해고자들이 자동차를 만든 것이다. 더 정확히는 자동차 부품 2만개로 해고자들과 예술가들이 중고 자동차 한 대를 분해하고 조립한 것이다. 멋지고 뿌듯했다. 고향으로 몰고 가 엄마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고 아들과 아내를 태워주고 싶었다. 기획안을 만들고 신나게 자동차를 만들 즈음 난 전정신경염으로 쓰러졌다. 그 자동차가 서 있는 그곳이 나를 더 뽐내고 빛낼 텐데 그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이 화가 났다. 먼저 간 그들을 위해 싸운다고 수천번을 말하고도 그 작은 조명이 탐났고 조명 밖에 서 있을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때 그 조명 욕심이 눈 안에 들어와 그를 시야에서 밀어냈다.

망원경은 굴뚝의 눈이자 안경이다. 말개진 망원경 렌즈로 굴뚝 아래 동료를 보다가 지부장이 들고 있는 하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였을까. 지부장은 하얀 종이 두 장을 매일 보고 있었다. 아마 굴뚝에 올라오고 난 이후였던 것 같은데 내용을 묻지 않았다. 저 하얀 종이 두 장은 도대체 무엇일까.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와 자신의 곁에 없는 아내 그리고 아이 둘을 키우는 해고자가 점심 밥을 올려줬다. 가슴이 뻐근해왔다. 굴뚝에 함께 있는 김정욱 사무국장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쌍용차에서 희망퇴직한 동생이, 7년째 정신병원에 있는 형도 어제 돌아왔다. 가장 아픈 이들이 돌아오고 있다. 가장 먼 데서 숨죽여 살아내던 이들이 하나둘 김득중 지부장 곁에 서고 있다.

지난 달 17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굴뚝에서 67일째 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이 지상 동료들에게 양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쌍용자동차(주)는 26명 희생자에 대해 “일련의 사망 사건에 대해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안타까움과 깊은 애도를 표한다. 다시는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난 2월5일 2차 실무교섭 자리에서 내놓은 회사 측 입장이다. 한 달이 지났지만 유가족이 누군지 회사는 알고 있을까. 어디에 거주했고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파악은 했을까. 어디에서 죽었고 사망 원인은 뭔지 그 유가족의 아이들이 입학은 했는지 졸업할 나이에 이른 아이들은 없는지 알아는 봤을까. 회사가 내뱉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말이 어떻게 이리도 모진 말이 되는가. ‘깊은 애도’란 말 또한 사람 속 뒤집어 천불 나게 만들고 사태 해결은커녕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는 아득한 말로 일그러진단 말인가. 꼬깃꼬깃 접힌 채 지부장이 조끼 안주머니에 품고 있던 그 하얀 종이 두 장은 쌍용차 26명의 희생자 명단과 가족의 연락처와 사망 원인이 담긴 자료다. 그 명단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지부장을 보면서 이곳 굴뚝으로 향하는 관심과 조명이 우리 둘을 관통해 26명 위패를 비추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부끄러웠고 죄스러웠다. 7년 동안 정신병원에 감금당한 아들의 울부짖음을 팔순 노모는 언제까지 더 들어야 하는가. 교섭의 시작은 26명 죽음과 반죽음의 상태로 목숨 붙은 이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실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회사는 한 달이 지나도록 교섭 자리에 거죽으로 앉아 ‘애도’를 입으로만 말하고 있다. 그가 만들고 싶던 그 자동차를 운 좋게 살아 남은 우리와 당신들이 함께 만들어 죽은 그를 살린 순 없는가. 3월5일 교섭을 지켜보고 그리고 판단한다.


이창근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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