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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한국철 도공사)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던 전 KTX 여승무원 34명이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냄으로써 승무원들의 근로자 지위 획득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승무원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모는 또 하나의 고통이 있다. 파기환송심이 확정될 경우 해당 승무원들이 4년간 받은 임금 등을 되갚아야 한다. 4년은 2008년 법원이 임금 지급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고, 사측이 2012년 12월 소송을 거쳐 지급을 중단했을 때까지의 기간이다.

하지만 해고(2006년)와 소송제기(2008년) 이후 회사 밖으로 내몰렸던 이들이 1억원 가까운 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승무원들 사이에서 “차라리 처음 소송에서 지는 편이 나을 뻔했다”는 자조가 터져 나왔겠는가. 9년 가까운 해고 기간에 소송만 7년 걸렸고, 3심 판결만 4년이나 기다렸는데 거액의 빚만 돌아온 셈이니 그 같은 절망감이 배어 나오는 것이다. 코레일과 국토교통부 등 관계당국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는 KTX 해고 승무원 문제를 이렇게 가혹한 법 논리로 처리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노동사건 재판의 예는 KTX 소송뿐이 아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현대차 아산공장 노동자 4명에게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현대차 사측은 잽싸게 ‘이번 판결을 계기로 무책임한 투쟁선동을 금하라’는 제목의 사보를 각 공장에 배포했다. 사보는 ‘이번 판결은 소수 사안임에도 최종 판결까지 10년 소요’, ‘최병승씨 최종 판결까지 7년 소요’라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사측이 7~10년씩 걸리는 재판을 거론하면서 노동자들을 겁박한 것이다. 여기에 ‘정규직임을 인정하라’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까지 무시하는 오만한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10년간의 긴 싸움 끝에 지난달 대법원에서 패소해 KTX 복귀가 좌절된 여승무원들과 철도노조가 4일 서울역 광장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코레일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비정규직 문제를 노사 간, 혹은 노사정 간 교섭으로 풀기보다는 ‘모 아니면 도’의 사법부 판결에 목을 매는 노동계의 현실도 딱하다. 비정규직의 사용 이유를 제한하고 상시·지속적 일자리는 직접고용의 원칙을 확립하도록 노동관계법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독일처럼 노동전문 법관들이 재판을 전담하는 노동법원의 도입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간 낭비도 줄이고, 전문성도 제고되는 이중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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