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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집을 꽃집이라고 불렀다. 왜 그리 부르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언뜻 생각해보면 예쁜 아이들을 꽃이라 할 수 있겠거니,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면 집은 집이되 아이들만 있는 특별한 집이라 이름을 붙였겠거니, 문패 대신 붙어 있는 간판 이름보다 낫겠거니 짐작만 하고 말았다. 아무튼 꽃집에 사는 아이들은 지켜봐 주는 부모 없이도 모두 무럭무럭 잘 자랐다.

제주도가 고향인 아이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려고 4학년 때부터 꼬박꼬박 후원금과 용돈을 모았고, 마침내 꿈을 이뤘다. 예의 바르고 반듯했던 아이는 할머니가 제 앞으로 남겨주신 돈을 내놓지 않으려고 버티는 삼촌들과 끝끝내 싸워 이겨서 그 돈을 대학 등록금으로 썼다.

이따금 엄마가 찾아오던 아이는 늘 아버지를 보고 싶어 했는데, 스무 살에 찾아낸 아버지는 병이 들어 아들의 이름도 가물가물했다. 전화로 아버지를 만났다고 하면서 처음 울먹이던 아이는 얼마 뒤 부고를 알렸다. 혼자 어찌 장례를 치르나 부랴부랴 달려간 장례식장에는 몰라보게 자란 꽃집 아이들이 꽉 차 있었다. 검은 옷을 차려입은 아이들은 사흘 동안 얼떨떨한 상주 옆을 지켰다. 상주가 아버지를 품에 안고 고향 앞바다로 내려가던 날, 함께 가는 아이가 대신 전화해 말했다. 장례식장에 와주셔서 고맙다고.

그 아이들이 서른이 넘었다. 한 고비를 넘으면 또 한 고비 수많은 벽을 뛰어넘은 아이들은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고향 앞바다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이, 아니 ‘반야 아빠’의 둘째 딸 돌잔치에 모인, 한때 꽃집에 모여 살던 이들의 옆자리에는 정말 꽃처럼 예쁜 아기들이 하나둘씩 앉아 있었다.

“할머니한테 한 번 가봐.”

여전히 예의 바른 그가 제 딸을 내 품에 안겼다. 아이는 방실방실 웃으면서 제 아빠와 낯선 할머니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래 열 살이었던 아이들이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었으니 나는 할머니지. 돌아오는 길, 책상 앞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종알종알 떠들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꽃집에서 자란 그들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나는 자꾸 중얼거린다. 이쁜 녀석들, 기특한 녀석들, 장한 녀석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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