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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공부방에서 만난 아이는 또래보다 몸집이 컸다. 아이는 늘 제 몸집과 다르게 앙증맞은 가방을 메고 와서 아이답지 않게 한갓지게 잘 챙겨두곤 했다. 야무지구나 싶었는데, 간혹 지나쳐서 사람들을 애먹였다. 한 번 싫다고 한 건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좀처럼 웃지도,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 아이가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내두르면 모두들 고집불통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

아이는 어느 날 같은 학년 친구와 사소한 일로 옥신각신하다가 불쑥 말했다.

“나는 3학년이 아니고 4학년이 맞아. 사실은 나는 언니야.”

아이의 표정은 몹시 억울해 보였다. 모두 아이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어쩌겠어. 베트남에서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한글을 잘 모르니 나이보다 아래 학년에 들어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아이도 잘 알고 있었다. 제 뜻과 상관없이 낯선 나라에 온 것도, 남의 나라 말로 공부해야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어눌한 한국말로 하소연해봤자 제 생각을 온전히 전할 수 없다는 걸 뻔히 아는 아이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래도 아이는 토요일마다 꼬박꼬박 공부방에 나왔다. 싫은 건 하지 않고, 밥투정도 하면서 아이는 조금씩 자라서 어느 날 문득 보니 키가 훌쩍 커 있었다. 아이는 키만 자라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올봄부터 엄마 친구 딸인 고등학생 언니와 함께 온 아이는 내내 그 언니를 챙겼다. 자신보다 한국말이 서툰 언니 옆에 붙어 앉아 어려운 말을 통역해줬다. 한국말도 어렵지만, 한국 역사가 너무 어렵다는 언니 말을 들으면서 아이는 중얼거렸다.

“나는 베트남 말을 자꾸 잊어버려.”

그 말을 하면서 허공을 올려다보는 아이는 마치 세상 풍파를 다 겪으며 혼자 살아남아 과거를 쓸쓸히 회상하는 할머니 같았다. 지금껏 다른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본 적 없어 그들의 외로움을 다 알지 못하는 나는 딱히 해 줄 말이 없어 웅얼거렸다.

“너네들 베트남 말도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아이들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 자랑스러워하면서 이 땅에서 잘 자랄 수 있을까.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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