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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 카네이션을 다느니 못 다느니 시끄러운 뉴스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새삼 내 삶에서 만난 수많은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좋은 선생님이 많았다. 어떤 분은 전쟁터에 나가려면 반드시 총을 챙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고, 어떤 분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하셨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으니 절망은 금물이라고 얘기해 주신 분도 계셨다. 내가 그나마 남 탓하지 않고 제 깜냥만큼 사는 건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일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다.

그는 화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1학년 담임을 맡은 그는 툭하면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아이들 앞에서 난감한 얼굴로 출석부를 교탁에 내리치다 속이 터져 울었고, 교장한테 싫은 소리를 들은 얘기를 은밀하게 전하다가 분통이 터져 울었다.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칠판 쪽으로 몸을 돌려 흐느낄 때면 아이들은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아이들도 1학년, 선생님도 1학년이었다.

스승의날인 15일 오전 서울 풍납동 풍성초등학교 정문에서 한 학생이 선생님에게 꽃을 달아주고 있다. 박민규 기자

여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담임이 울면 시의적절한 위로를 할 줄 알게 되었고, 담임은 울고 나서도 통지표 도장을 받아오지 않은 아이한테 아무렇지 않게 화를 낼 줄 알게 되었다. 양쪽 다 좀 더 편해진 것이다. 그러면서 학교 아래에서 자취를 하던 담임선생님은 체육대회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선뜻 방 열쇠를 내줬다. 아이들은 회의를 하고 나서 담임선생님이 퇴근할 때까지 방에 벌렁 누워 수다를 떨었다. 나로서는 선생님이 먹고 자고 화장하고 음악을 듣는 방을 드나드는 게 세상의 금기를 깨트리는 도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마도 노련한 선생님이었다면 철없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세상을 선뜻 열어놓지 않았겠지만, 아이들과 좀 더 친밀해지려는 초보 선생님은 모든 것을 드러내줬다. 굳이 훌륭해 보이지 않으려고 했던, 때론 투정하는 친구 같고, 때론 잔소리하는 언니 같았던 선생님과 보낸 일 년은 즐거웠다. 서툴렀던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은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게 덜 두렵지 않았을까? 스승의날, 어디선가 곱게 나이 들고 계실 선생님을 생각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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