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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석탄을 실어 나르는 화물기차가 다니는 기찻길 옆 동네라 그랬는지 모른다. 골목길 흙이 시꺼멓던 것은. 해거름 녘까지 골목을 뛰어다니면서 노는 아이들 발에 파인 흙은 연탄처럼 까매서 마당에는 늘 검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이들이 아무리 밟고 다져 놓아도 비가 오면 골목은 이내 곤죽이 된 펄처럼 발이 쑥쑥 빠졌다. 그래도 아이들은 비만 그치면 진흙탕이 된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그 골목길 아이들은 대개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학교에서 못 본 아이들도 금방 한 패거리가 되어서 놀았다. 그 아이도 골목 모퉁이에서 여자 아이들끼리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만났다. 곱슬한 머리를 바짝 묶어 올린 아이는 깡총한 치마를 입고 고무줄을 잘도 뛰어넘었다. 그 아이의 등은 낙타처럼 봉긋 솟아있었다. 골목길 아이들은 그 아이의 등에 달린 혹을 낙타의 등처럼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그 아이의 집은 구멍가게 앞에 있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한테 받은 50원을 들고 구멍가게에 가서 군것질을 했는데, 종종 파란 대문 앞에 서 있던 그 아이를 보곤 했다. 어떤 날은 둘이 담벼락에 기대 껌을 씹었고, 여름에는 둘이 하드를 빨아먹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 아이 집을 드나들었다. 지붕이 낮은 집에는 키가 큰 오빠가 있었다. 우리나라 지도 그리기 숙제를 함께하던 날 그 오빠는 사회과부도 밑에 종이를 끼워 놓고 바늘로 꼼꼼하게 밑그림을 찍어 줬다. 아이는 제 오빠가 자기 것보다 친구 것을 먼저 해줬다고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그 아이와 친구가 된 해 가을에 나는 전학을 갔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어른이 된 뒤에 길에서 등이 솟은 사람을 맞닥뜨릴 때면 그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그 골목길에서 내내 자랐을까? 골목길 아이들처럼 세상 사람들도 그 친구와 한 패가 되어 잘 놀았을까?
며칠 전 붐비는 지하철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면서 걱정한답시고 ‘왜 사람 많을 때에 나와서…’ 중얼거리다가 불현듯 내 친구가 떠올랐다. 그 골목에서 고무줄을 가장 잘하던 내 친구가. 내 친구가 나같이 우매한 사람들 보란 듯이 어릴 적처럼 온 세상을 펄쩍펄쩍 잘 뛰어넘고 다니길….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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