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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고깃배가 드나드는 포구였다. 포구를 ‘개’라 했으니 그곳의 본래 이름은 ‘터진개’였다. 바닷가로 터져 있는 그 포구에 일본인들이 부려 놓은 고깃배까지 드나들면서 어시장이 들어섰다. 터진개 시장이라 불리던 어시장에는 앞바다에서 잡힌 고기들이 깨끗하게 씻어 놓은 돌판에 놓였다. 이른 아침부터 어시장은 싱싱한 생선을 사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생선 장수들은 솜씨 좋게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낸 생선을 대팻밥 포장지에 둘둘 말아줬다.

까마득하게 오래전 얘기다. 쌀을 제 나라로 실어 나르던 일본 배가 포구를 떠나고, 고깃배도 점차 수가 줄어들면서 어시장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으리라. 고깃배도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도 없는 포구는 메워져 앞바다 작은 섬과 잇닿으면서 터진개 시장은 푸성귀와 없는 것 빼놓고는 다 있는 신포 시장이 되었다. 어시장의 흔적은 시장 골목 구석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생선 좌판뿐이었으니,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의 기억에도 생선을 사고팔던 시절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누군가 기억을 하든 말든 그는 37년을 신포 시장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생선을 팔았다. 마흔에 시작한 장사였다. 꼿꼿하게 살아보고자 시작한 장사였겠지만, 긴 세월 동안 길 위에서 온몸으로 세월을 버텨냈을 그의 허리는 해마다 점점 굽어져 더는 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의 몸놀림은 여전히 재빠르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 한여름 뜨거운 햇볕에 잘 말라비틀어져 단맛이 나는 생선처럼 그의 몸은 단단해져 자신만의 힘을 품고 있는 것이리라.

“정말 손님이 없어요. 그냥 가지 말고 박대 좀 사가요.”

그는 좌판 앞에서 지칫대는 이를 얼른 붙잡아 세우면서 요즘 가장 맛있을 때라는 박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구덕구덕 마른 분홍빛 박대는 그가 소금에 직접 절인 것이다.

“맛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내가 장사를 오래 해서 그래도 간은 좀 맞추니까 먹기 괜찮을 거예요.”

박대를 들고 오며 37년 간 생선을 고르고, 절이고, 말렸을 그를 생각했다. 그만큼 하지도 않으면서 자만했구나. 나는.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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