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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공사는 아래부터 서서히 위로 진격하고 있었다. 공사장 비계처럼 쇠파이프를 얽어 둘러놓은 비닐 가림막으로 가려진 곳들은 이미 쑥대밭이었다. 과연 이곳에 집들이 있었던가 싶게 시멘트도 벽돌도 널빤지도 잘근잘근 부숴 놓았다. 제 덩치보다 큰 집의 기둥을 쪼아 순식간에 주저앉혀 버리는 포클레인을 앞세운 이들은 윗동네 코앞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윗동네는 오래전에 전의를 상실했다. 그깟 포클레인쯤이야 하고 싸울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아주머니들이 파마를 하고 앉아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을 샤넬미용실도, 아이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을 럭키슈퍼도, 언제나 철 지난 옷들을 빽빽하게 걸어놓았을 신생세탁소도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가게 문 앞에도, 녹슨 대문 앞에도 하나같이 ‘공가’라는 딱지를 달고 있었다. 딱지에는 빈집이나 멋대로 드나들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경고가 빨간 글씨로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2016년 12월24일자로 아직 사람이 살고 있으니 제발 쓰레기 좀 버리지 말라는 팻말을 붙여놓은 집 대문에도 빳빳한 공가 딱지가 붙어 있었다. 다세대 주택에 산다는 할아버지는 이 골목에 아직 대여섯 집이 남아 있다고 했다. 법원에서 재판 중이라는 그의 얼굴은 비장했다.
“여기 내가 30년을 넘게 살았는데, 이렇게 나갈 수는 없지요. 재판 중인데 곧 판결이 나올 겁니다.”
할아버지는 30년 전 이곳에 이사 왔던 기억을 더듬었다. 평생 벌어서 집 한 채 샀고, 그 집에서 노후를 보내려 했다는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호락호락하게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내 집 내가 지키겠다는데 누가 막겠냐는 그의 모습은 당당했다. 그는 판결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나올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도 뻔히 알 것이다. 이 싸움의 승자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그의 집은 결국 염리동 골목길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서울 곳곳에서 그랬듯이 이곳도 세월과 소박한 꿈과 추억을 몰아낸 뒤 높고, 비싼 아파트가 모조리 점령하게 될 것이다. 승자는 남고 패자는 떠나야 하는 이 싸움은 아마도 서울 전체가 고층 아파트로 채워져야 끝날지 모른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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