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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년이었을 때, 세상은 우리 편이었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을 몰라도 해는 뜨고 지고 우리는 무럭무럭 자랐으니까.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이 있고 명왕성이 있다는 걸 몰라도 괜찮았다. 하지만 태양계에 속한 행성들의 질량과 부피를 익히고 별들을 구성한 화학원소들이 무엇인지 외우면서 깨닫게 된다. 별에도 이름이 있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하니 뭐라도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러면서 짐작한다. 세상은 우리 편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번듯한 회사도 다녀봤고, 이것저것 사업도 해봤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는 그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운전하는 걸 워낙에 좋아해서 선뜻 이 일을 시작했지요. 음악도 듣고, 별도 보고. 그런데 이제는 앞차 뒤꽁무니만 보고 살아야 하니까 힘드네요.”

그는 오래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천문대로 별을 보러 다녔다면서 망원경으로 본 별 이름을 헤아리다가 말했다. 명왕성은 평균 기온이 섭씨 영하 248도라서 산소가 고체로 되어 있다고.

말 첫머리에 꼭 ‘그런데’를 붙이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명왕성에 가려면 톱을 가져가야겠네. 숨 쉬려면 톱으로 산소를 잘라서 씹어 먹어야 할 테니까. 그러므로 거기 가기 전에 치과 검진은 꼭 받아야 하겠구나.

그렇지만, 그는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10년 전에 그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됐잖아요. 우리 때는 명왕성도 태양계라고 배웠는데….”

보잘것없이 작은 행성이라는 이유로 명왕성을 태양계에서 퇴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는 말끝에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별도 그런 마당이니, 사람도 퇴출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지요.”

그런데 정신만 바짝 차리면 괜찮을 수 있을까? 오늘도 여전히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을 명왕성을 인간이 멋대로 퇴출시킨 것처럼, 우리도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걸어갔을 뿐인데 내쳐지는 것은 아닐까. 

한때 소년이었던 우리는 밤하늘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기껏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명왕성은 정말 왜 퇴출된 거지?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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