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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피도 끓어오르는 때가 있었을 것이다. 거선의 기관처럼 뛰노는 심장으로 앞으로만 나아가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청춘도 뜨거웠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청춘을 일에 바쳤다고 했다. 일찌감치 사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남들처럼만 먹고사는 게 꿈이었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예순셋에 사업을 접으면서도 크게 미련이 남지 않았다. 할 만큼 했다고 여겼으니까. 그는 장성한 자식들을 앉혀 놓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면서 자신의 삶이 궁색하지 않았음을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올 추석에 손녀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이리 말했다. “집이고 돈이고 얽매여 살 필요 없다. 캠핑카 하나 사서 세상 곳곳을 돌아다녀라.”

그는 시간을 되돌린다면, 다시 피 끓는 청춘이 된다면 그리 살았을 거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꿈을 이뤘다고 여긴 건 허상이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공무원이었던 노인도 올해 추석에는 손자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꺼내지 않았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지. 늘 그렇게 말했는데, 죽어라 공부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더라고.”

그의 두 아들은 남들만큼 뒷바라지하지 않아도 공부를 잘해서 자랑거리였다. 그는 두 아들이 하루하루 새로울 게 없는 자신보다 빛나는 삶을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르지 않더라고. 내 아들도 제 자식들 성적에 일희일비하면서 살더라고. 그게 다더라고.”

올해 여든 살이 된 그는 누군가는 돈에, 누군가는 공부에 청춘을 바치는 게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거냐고 했다.

한때는 청춘이었던 이들의 회한은 쓸쓸했다. 찾아주는 이도, 불러주는 이도 드물어 우두커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지난 과거를 되짚어봤을 그들의 쓸쓸한 시간이 서글펐다. 아마도 그들은 기억이 흐릿해져 잊었겠지만, 그들의 청춘이 허망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으로든 빛났을 것이며, 무엇으로든 뜨거웠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새파란 청춘에서 시든 것이 아니라 붉게 물든 것일 뿐이다. 이 가을처럼.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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