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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 일자리를 앞세운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이 표출되면서 국가발전전략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른바 경로 의존을 추구하는 성장지상주의 명제가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부활을 모색하는 것이다. 정책오류를 치유하는 점진적 정책 환류는 필요하지만 정부 때리기에 굴복하는 급진적 정책변화는 일관성과 시의성 측면에서 득보다 실이 많다.

포용국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발전전략은 적정한 정부의 선도하에 성장과 분배 또는 경제와 사회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남미가 아니라 북유럽의 발전전략과 유사하다. 남미는 지리상의 발견 이후 이베리아가 자행한 잔혹한 수탈을 경험했다. 19세기 중반 정치적으로 독립했지만 경제적 종속상태가 지속됐다. 이에 종속이론이 제안한 고립주의 발전전략인 수입대체산업화를 채택하였다. 경제적 성과는 저조했으나 농축수산물이나 지하자원을 대체하는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기반의 신성장동력을 찾기 어려웠던 남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노르딕 국가와 우리는 자원과 내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교육강국을 표방하면서 제조업을 육성했다. 핀란드의 노키아나 스웨덴의 볼보, 한국의 반도체나 자동차가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전략산업의 비교우위를 위해 대기업에 올인한 수출지향산업화가 한계에 다다르자 스타트업이 선호하는 온라인 게임이나 생활 디자인으로 전환했다. 핀란드의 앵그리버드, 스웨덴의 이케아, 한국의 인터넷포털과 의약·바이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20세기 중반 남미는 세계대전과 같은 구대륙의 혼란이 가중되자 반사이익을 누렸다. 노동과 자본이 유입되고 전쟁특수도 찾아왔다. 하지만 호황기에 축적한 부를 새로운 도약의 원천으로 부상한 기술이 아니라 탱고와 삼바 같은 예술에 소비하고 말았다. 짧았던 호황이 지나고 위기가 닥치자 국부 유출과 계층 간 대립이 심화됐다.

냉전시절 중개무역에 의존한 북유럽 국가들은 구소련이 붕괴하자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전후 고도성장기에 축적한 부를 복지에 투자한 북유럽은 사회민주주의에 신자유주의를 절충한 ‘유연안정성(flexicurity)’과 국가적 난제에 직면해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한 ‘사회협약’을 앞세워 위기를 극복했다. 또 공동체를 중시하는 북유럽에서는 양성평등, 워라밸, 친환경 등이 제도화된 상태이다.

하지만 복지마인드보다 안보마인드에 충실했던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이하여 사회협약보다 구조조정을 중시했다. 단기적으로 경제는 살아났지만 계층 간 격차확대와 산업생태계 파괴라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우리의 산업현장에는 독선과 불통의 갑질 문화가 온존한 상태이다. 수직적 하청구조를 악용한 단가 후려치기나 벤처기업의 신기술을 가로채는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발전전략은 포용국가의 비전하에 성장(시장), 복지(사회), 제도(정부)라는 균형 잡힌 3가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최근의 논란을 극복하는 미래의 국정관리는 활기찬 시장(혁신성장, 고용주도성장, 공정경제 등), 안정된 사회(근로장려, 주거안정, 양성평등 등), 적정한 정부(공공서비스, 규제개혁, 정부 간 협력 등)를 추구해야 한다.

<김정렬 | 대구대 교수 도시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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