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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8일부터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됐다. 이제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 모든 좌석에서 안전띠를 매야 하고, 자전거를 탈 때 어린이 어른 가릴 것 없이 인명보호장구(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 만 6세 미만의 영유아를 자동차에 태울 때에는 유아보호용장구(카시트)를 장착해야 한다. 안전띠를 매지 않거나 카시트를 장착하지 않으면 운전자는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안전모 없이 자전거를 타도 처벌규정이 없어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겠지만 일정한 계도기간을 거친 후에는 안전모 착용 의무화에도 처벌규정이 도입될 것이다.

당장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서울시가 온라인 공론장 ‘민주주의 서울’을 통해 실시하고 있는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안전모 착용 의무화’ 설문조사에서 반대 여론은 90%에 달했다. 법대로라면 영유아를 데리고 버스나 택시를 탈 때 카시트를 들고 다니게 생긴 부모들의 불만이 들끓자 경찰은 황급히 법 시행 하루 만에 단속을 유예하고 계도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죽하면 소관부처인 행정안전부 김부겸 장관이 진작 인터넷에 글을 올려 “국회가 조만간 법을 좀 손봐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며 곤혹스러운 심경을 내비쳤을까.

개정 도로교통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단순히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개정법에 따르면 택시운전사가 승객에게 안전띠를 착용하라고 안내했음에도 불구하고 승객이 착용하지 않은 경우 택시운전사는 처벌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승객은 처벌받을까? 그것도 아니다. 처벌의 공백이 발생하는 것이다. 졸속입법의 결과다. 일각에서는 자전거 안전모 착용 의무화는 별도의 처벌규정이 없으니 안전문화 정착을 위한 계도적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자전거를 운전하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 규정으로 인해 자전거 운전자가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전거 안전모 착용 의무화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개정 도로교통법에 숨겨져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국가만능주의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라는 입법목적에 토를 달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그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국가가 하나부터 열까지 국민의 일상에 개입하는 것마저 당연히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는 안전띠를 매지 않을 자유가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에서 나오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보호영역에 속하며, 자동차 운전자에게 안전띠를 매야 할 의무를 지우고 이를 위반했을 때 범칙금을 부과하는 도로교통법 규정들은 국민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비록 합헌 결정이 내려지긴 했지만 국민에게 안전띠 착용을 강제하는 도로교통법 규정들이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자전거 안전모 착용 의무화와 카시트 장착 의무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민은 국가가 돌봐줘야 할 연약한 존재가 아니다. 국민은 완전하지는 않아도 저마다의 개성과 인격을 가지고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을 바탕으로 사회 안에서 자신의 삶을 자신의 책임 아래 결정하고 형성하는 나라의 주권자다. 국가가 국민의 후견인을 자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그 목적을 실효성 있게 달성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일상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된다. 형사처벌로 국민을 윽박지르고 계도라는 명목으로 국민을 가르치려고 들어서도 안된다. 향후 국회나 정부가 공익을 위해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을 할 때 국민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며 국가의 역할은 보충적이고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되새긴다면 적어도 이번 개정 도로교통법이 초래한 것과 같은 사회적 혼란은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개정 도로교통법은 지난 2월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96명, 반대 0명, 기권 4명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가결됐다. 그보다 앞서 이루어진 2월2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뒤져봤다. 몇몇 의원들이 시기상조론을 내놓거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제기를 한 것 외에 국가가 이렇게까지 국민의 삶을 세밀하게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2018년 우리 현실에서 아직 국가는 너무도 당연하게 국민에게 맡겨둬야 할 많은 것들을 국민을 대신해서 한다. 국가 입장에서는 국민이 그만큼의 역할을 요구해놓고는 이제 와서 딴소리냐며 발끈할지 모르겠다. 우리 솔직해지자. 국가도 국민에 대한 통제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닌가.

<류제화 | 여민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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