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드나드는 인터넷 카페는 봄부터 시끄러웠다. 카페를 뜨겁게 달군 이슈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화단 수호’다. 공동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화단을 조성하자거나,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주민이 함께 화단을 일구자는 아름다운 얘기일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화단을 지키자고 나선 이들은 옆 단지 아파트와 우리 아파트 사이에 길게 놓인 화단을 옆 단지 주민들이 멋대로 오가는 것을 좌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옆 단지 주민들이 지하철역을 쉽게 갈 요량으로 화단을 밟고 지나다닌다면서 화단에 울타리를 쳐서 넘나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에 일부는 과한 처사라고 반대했다. 한 주민은 자신은 옆 단지 쪽에 있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데리고 오갈 때 어쩔 수 없이 화단을 넘게 된다면서 화단에 길을 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묵살당했다. ‘화단 수호자’ 중 한 사람이 우리 아파트에서 그 유치원을 갈 때 화단을 지나지 않고 에돌아가는 길의 거리와 화단을 지나서 가는 길의 거리를 직접 측정해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줬다. 참으로 적극적인 그는 단호했다. 옆 단지 주민들을 저지하려면 우리 주민들도 불편을 감수하라는 것이다.

화단 수호자들의 목소리가 커서 이웃 공동체를 얘기하는 평화주의자들이나, 화단이라고는 하지만 풀밭이라서 밟고 다녀도 괜찮지 않겠냐는 자유주의자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서울 어느 지역에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에 외부에 사는 아이들이 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인간들의 이기심에 혀를 찼는데, 우리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도 그에 못지않았다.

화단 수호자들이 그토록 아끼는 화단은 여름이 지나면서 들풀이 어린아이 키만큼 자라서 그 틈으로 사람이 오갔는지 표도 나지 않는다. 나는 슈퍼마켓에 갈 적마다 하얀 개망초로 뒤덮인 화단을 넘는다. 개망초의 꽃말은 ‘화해’다. 어디든 흔히 피는 꽃에 이런 꽃말을 붙인 이는 언제든 나와 타자를 구분해 경계를 짓고 싸울 태세를 갖추는 인간 세상을 꿰뚫어 보았을지 모른다. 가을에는 개망초가 핀 화단에 큰 돌 몇 개 박아 길을 내면 좋겠다.

<김해원 | 동화작가>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