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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을 쓰고 싶다는 20대 초반의 청년이 가장 본받고 싶은 작가로 권정생 작가를 꼽았다. 초등학교 때 <강아지똥>을 읽은 감동이 잊히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듣고는 오랜만에 책장 깊숙한 곳에 꽂아둔 책을 꺼냈다. 딸에게 소리 내어 읽어 주던 숱한 밤들과 딸애가 책에 낙서를 하고는 빙글빙글 웃던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리고 과거에 딸한테 읽어주며 코끝이 시큰했던 바로 그 장면에서 또다시 울컥하고 말았다. 

이제 보니 <강아지똥>은 ‘순수’나 ‘동심’ 같은 세상이 뻔히 바라는 걸 담은 동화가 아니었다. 우스운 얘기에 종종 등장하는 똥이 웃기는 것인 줄로만 아는 세상에 똥도 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가장 하찮은 것이 세상의 뿌리가 된다는 작가의 목소리는 조용하나 과격하다. 욕망이 쉽게 탐욕으로 변하는 세상에서 작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예배당 문간방에 살면서 새벽종을 울리던, 캄캄한 새벽에 종 줄을 잡아당기며 유난히 빛나는 별빛을 바라본 추운 겨울날과 소박하고 아름다웠던 누군가의 새벽 기도를 기억하는(<우리들의 하느님> 중 )’ 작가의 삶은 고요한 새벽과 같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새벽 종소리처럼 또렷했다. 오래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책 읽는 문화를 만든다며 한 달에 책을 한 권 선정해 발표할 때, 그는 자신의 책을 선정하겠다는 방송사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가장 행복한 경험은 책방에서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일인데, 왜 그런 행복한 경험을 없애려는 것이냐.” 

이 말은 온화하지만 강직한 그의 성품을 드러내는 일화로 오래 회자했다. 그런데 책방은 쉬 찾을 수도 없고, 아직도 책방으로 책을 사러 가느냐며 질책하는 온라인서점 광고에 떡하니 작가가 등장하는 시대에 그의 말은 무색해졌다. 세상은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아이의 행복을 이미 빼앗았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마주하는 게 당혹스러울 때 권정생 할아버지 같은 분이 계셔서 한마디 일러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강아지똥>이 여전히 어린아이에게 읽히고, 그의 삶을 존경하고 기억하는 청년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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