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역대 한국 대통령 중 책을 가장 많이 읽었을 것 같은 분을 내 맘대로 고르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고, 베스트셀러 작가 1위를 기록할 분은 문재인 대통령이 될 듯싶다. 그가 표지를 장식한 ‘타임’지 아시아판과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이 종합 베스트 1, 2위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10위 내에 문 대통령이 쓴 책도 여러 권 올라 있다. 대통령 당선 이후 보인 며칠간의 친서민적 행보로 이 열기는 더 뜨겁다.

그런데 말이다, 다른 책들은 안 팔리는데 대통령 책만 잘 팔리니 좀 심통이 난다. 이 심통을 풀 길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문재인대통령이 오는 6월14일부터 5일간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 일일 책 판매원이 되어보면 어떨까. ‘달님책방’이란 부스를 마련해서 딱 한 시간만 대통령이 직접 책을 팔아보는 것이다.

국민과의 색다른 스킨십을 할 기회도 되고, 책이라는 미디어를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메시지도 전할 수 있다. 책을 판매하는 미션 정도로 그칠 게 아니라 손님이 찾아와 “요즘 너무 팍팍하고 메마른데 어떤 책이 좋을까요?”하고 문의하면 “이런 책은 어떤가요?”라는 독서 코디네이터를 겸하는 건 어떨까.

박근혜 전 대통령도 취임 첫해인 2013년 서울국제도서전을 방문했다. 300여명의 귀빈을 구름처럼 몰고 와 축사하고 어떤 출판사의 부스에 들러 책도 몇 번 만지작거린 뒤 한 바퀴 휙 둘러보고 갔다. 모두 사전에 계획된 동선 그대로였다. 덕분에 박 전 대통령의 손을 탔던 책은 반짝 베스트가 되고 행사도 잘 치러져 ‘홍보해주기’ 전문가다운 면모를 보여줬지만 보여주기식 홍보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책, 필요한 책 등 시간 대비 전략적 독서를 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그것이 출판사와 서점의 역할이고 대통령이 도서전에서 보여줄 수 있다면 성공적일 터이다.

하지만 당장 내각 인선부터 청문회 등 국정 장악, 일자리 만들기부터 각종 개혁 등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무슨 책 판매 같은 소리인가 말이다. 사회 영역마다 얼마나 많은 유사한 행사가 있는데 전부 대통령이 도우미로 나설 순 없지 않은가.

남들은 다들 자기 입장에서 이런 것 해달라 저런 것 해달라 잘도 얘기하던데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한지 모르겠다며 자책하다가도 어려운 출판 시장을 생각하며 결심한다. ‘자, 그를 국제도서전의 1일 독서 코디네이터로 모시자.’ 문 대통령은 촛불이 만든 대통령이다. 다음 노벨평화상을 대한민국 국민이 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와 평화적·헌법적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았다. 나는 여기에 책의 기여가 10퍼센트는 있다고 믿는다.

한쪽 한쪽씩 수백 수천 쪽을 곱씹어서 완성되는 ‘독서의 교양’이 수백 수천 명의 시민을 포개 간절한 열망과 열망이라는 접착제로 혁명이라는 책을 제본했다. 나는 이 혁명이 정권 교체를 필두로 이 사회를 바꾸는 명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후보 문재인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낸 공도 10퍼센트는 책에 있다고 믿는다. 많은 이가 그의 책을 읽고 그 사람을 이해했으며, 왜 대통령을 하려는지, 어떤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지 이해했다. 앞으로도 그의 책은 계속 읽히며 각종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지지층을 단단히 결속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각종 현안이 많지만 대통령이 이 모두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걸 누구나 안다. 그러나 해결하려는 노력은 해야 하고 그것이 길로 나타나야 한다. 출판 정책도 마찬가지다. 출판이라는 행위에 희망이 비쳤으면 좋겠다. 서둘러 예산을 조성해 지원책을 만들기보다 우선 조금씩 사회 자체가 독서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교육부터 시작해 많은 게 좀 더 인간다워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예산도 필요 없는 이런 이벤트를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책을 순시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북마스터가 된 대통령의 이미지만으로도 사람들이 책을 훨씬 더 친숙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 시대가 열리면 퇴근길에 가까운 교보문고를 들러 신간 쇼핑도 하고.

만약 우리 대통령이 일일 책 판매원으로 나서주신다고 결심한다면 알바비는 두둑하게 챙겨드릴 생각이다.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나라, 책 읽기 행복한 나라. 이런 생각만으로도 밝고 환한 달님이 가슴에 차오르는 듯하다. 자 가자, 달이 떠오른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여차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