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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최근의 대구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관악산 여고생 집단 폭행 사건 등으로 인해 청소년 범죄자를 보다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연일 매서워지고 있다. 범죄 예방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국민의 분노와 불안에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총 25건의 소년 범죄 관련 개정 법률안의 주된 내용도 형량 강화에 방점이 있다. 그중에서도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과 흉악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성인처럼 취급하여 처벌의 상한을 높이는 방안은 분명 고려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청소년 범죄자 처벌 강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처벌을 강화하면 범죄가 감소한다’는 명제가 아직 사실로 입증되지 못했기에 치밀한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

경향신문과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 주최로 지난 15일 서울 마포청소년문화의집에서 열린 시민토론에서 참가자들이 청소년 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추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미국은 날로 심각해지는 소년 범죄에 대응하여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정책 기조를 처벌 강화로 전환했다. 그러나  범죄가 감소하기는커녕 엄격한 처벌을 받은 소년들이 후에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는 부작용만 양산되었다. 미국은 강경한 소년사법 정책을 2004년을 기점으로 결국 포기하기에 이른다.

형량 강화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부분에 대한 관심이 분산되는 상황도 걱정스럽다. 범죄 청소년을 아무리 강하게 처벌한다고 해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키지 못하는 한 그들은 언젠가 반드시 사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의 범죄적 성향을 개선하고 그들을 범죄로 이끄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어떻게 그들을 교화시킬 것인지, 어떻게 환경을 바꿀 것인지, 근본적인 환경 개선이 어렵다면 대안적인 환경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범죄를 저지른 소년에 대한 치료·교육·사회복귀 프로세스를 완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처벌만 강화한다면 앞으로도 소년 범죄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과 비교할 때 너무 열악한 우리 소년사법 집행 현장의 여건이 조속히 개선되어야 한다. 외국의 보호관찰 담당자가 1인당 평균 27명을 담당하는 반면에, 우리는 담당자 1인당 138명을 관리하고 있고, 소년원 선생님들도 한 달 평균 80시간 이상의 초과 근무로 지쳐가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우리 소년원은 정원보다 훨씬 많은 인원을 맡아 교육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의 소년원들은 정원을 140% 가까이 초과한 상황이다. 소년원 학생이나 보호관찰 청소년을 치료하고 교화하는 일이 일반 학생을 지도하는 일보다 난도가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인력과 시설로 겨우 버티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범죄와 관련된 청와대 국민청원이 벌써 세 번째로 20만명을 돌파하였다. 그러나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그들을 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바꾸어 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품이 든다. 뜨거운 사회적 관심이 처벌 강화 논의로만 집중되지 않고, 가정·학교·지역사회·국가 등 모든 사회 영역이 힘을 합쳐 청소년에 대한 치료·교육·사회복귀 프로세스 개선에 나서길 기대한다.

<강호성 | 법무부 범죄예방정책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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