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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산책자]지면 낭비

opinionX 2018. 9. 17. 11:20

일에 지쳤고, 날마다 이어지는 약속과 술자리로 피곤이 쌓였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칼럼의 순서가 돌아와 글을 강요한다. 오늘은 그 요구에 공백으로 답하고 싶다. 글자에 글자를 이어붙이고 단어들을 엮어내지만 기실 글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기호들이 모여 의미를 전달한다는 건 우리의 오랜 환상이다.

우리들의 기억은 구성되었다. 당연히 그랬으리라는 추정,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상상을 가지고 우리는 기억한다고 믿는다. 누가 만들어준 이데올로기, 습관화된 단어, 공식적인 표현들에 의지해 우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마르크 블로크는 말했다. “역사가에게는 애석한 일이나, 사실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때마다 어휘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사실을 떠나 화석이 된 말이 새롭게 달라진 사실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그러므로 당신이 듣는 것은 내가 말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나도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누군가 공적 매체에 개인의 사담이나 뇌내 공상이라도 실을라치면 사람들은 곧바로 ‘지면 낭비’라고 한다. 오늘은 그런 말로 지면을 낭비하고 싶다. 하지만 어떤 글로 지면을 낭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글은 없다.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의미를 실어 나르려 하고, 정보를 전달하고 의견을 피력하려 한다. 너무 많은 뉴스, 너무 많은 주장, 너무 많은 지식에 우리는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러므로 한번쯤은 지면을 낭비해도 좋으리라.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피하고 싶은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무런 뜻도 없는 말들을 던지고 싶다.

카프카는 그의 일기에 썼다. “내가 타인들과 무엇을 공유하고 있느냐고?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 독일어를 쓰는 체코 유대인으로서, 카프카는 체코 사람도 독일 사람도 아니었고, 이디시 문화에 속한 유대인도 아니었다. 어떤 공동체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조차 소속되기를 거부했다. 그는 늘 자신의 기억에 배반당했다. 뜬금없이 소송에 걸리고 벌레가 되었다. 니체는 또 다른 맥락에서 말했다. 오래되고 확실한 기억일수록 질병이며 더 중한 질병이라고. 하지만 세상은 늘 선택된 정보와 가공한 기억들을 쏟아내며 ‘사실’이라 강변한다.

적막과 침묵도 소중한 공유재라고 말한 사상가가 있다. 상상해보라. 어느 날 신문의 한 면이 텅 빈 채 배달된다면? 컴퓨터의 인터넷 접속화면이 입력창조차 없이 막혀 있다면? 그러면 우리는 우리 머리를 열고 가득 쑤셔 넣으려는 저 ‘의미’의 쓰레기들을 피해 무한한 정신의 자유로 도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읽기의 폭력과 검색의 강박을 피해 빈 하늘에 눈의 초점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먼지가 피어오르는 소리, 나무가 숨 쉬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눈의 권력을 물리친 자리에서 귀가 잠시 승리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얼마 전 집의 TV가 고장 났다. 전원이 혼자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더니 기어이 죽어버렸다. 똑같은 고장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세계 1위의 전자회사가 10년도 안된 기기의 고장을 으레 있는 일이라며 깔아뭉개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화가 치밀었지만 고작 TV의 전원에 지배당하는 꼴이 우스워 마음을 가라앉혔다. TV 없이 지낸 일주일이 꽤 그럴 듯했기에 애프터서비스(AS) 기사 부르기도 포기했다. 우리 가족은 좀 더 대화를 많이 했고 책을 좀 더 읽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최저임금 논란, 입시와 교육정책, 인천 퀴어축제의 기독교인 난동, 쌍용차 복직 합의, 9·13 부동산대책까지 세상 돌아가는 것은 다 알고 있었다. 뉴스와 정보가 부족해서 시민됨을 포기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TV가 꺼진 날, 책을 잡았다. 이성형의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를 다시 읽었다. 일찍 세상을 뜬 저자가 새삼 아쉬웠다. 라틴아메리카 사정이 더 알고 싶어 박정훈의 <역설과 반전의 대륙>을 이어서 읽었고,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의 실패를 비웃는 언론들의 논지에 코웃음이 났다. 남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미국과 거대 자본들의 농간 앞에 무너진 그들이 안쓰러웠다. 오래전 포기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수탈된 대지>와 <불의 기억>도 책장 깊은 곳에서 찾아내 읽기로 했다. 난삽한 번역을 이겨내며 한 줄 한 줄 읽어나갔다.

어떤 날은 책조차 집어치웠다. 책을 읽지 않아도 좋았다. 우산을 들고 집 앞 산책로에 나가 빗소리를 들었다. TV가 멈추어도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그 시간은 빈 시간이 아니었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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