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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대한문 분향소

opinionX 2018. 9. 14. 10:51

13일 오후 2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요란한 취악대 소리와 함께 왕궁수문장 교대식이 막 시작될 즈음 최종식 쌍용자동차 사장이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왔다. 최 사장이 30명의 쌍용차 희생자 영정 앞에서 조문하는 사이 한 조합원이 외쳤다. “진정으로 참회하세요. 쌍용차 사장 9년 만에 처음 (조문)이야.”

대한문 앞에 쌍용차 분향소가 처음 마련된 것은 2012년 4월5일이다. 22번째 희생자인 해고노동자 이윤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23번째 죽음은 막자”며 만들어진 거다. 하지만 그 후에도 해고자와 가족 8명이 더 희생됐다. 이후 대한문 앞은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도 함께 모여들며 국가 폭력에 상처받은 이들의 성지가 됐다.

쌍용자동차 최종식 사장이 13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차 해고노동자 故 김주중씨 등 30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사측이 분향소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쌍용차 노사는 이날 복직 교섭을 재개했다. 강윤중 기자

박근혜 정부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분향소 설치 때부터 방해를 했던 경찰은 노조와 시민단체의 추모행사와 기자회견, 심지어 종교행사도 불법집회라며 제지했다. 분향소는 2013년 3월 노숙인의 방화로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었다. 이후 서울 중구청은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분향소를 기습 철거하고 그 자리에 화단을 조성했다. 이에 노조와 시민단체가 항의집회를 하려 하자 경찰은 집회신고를 불허했고, 법원에서 효력정지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노조의 분향소 재설치 시도와 경찰·중구청의 제지가 반복됐고, 이 과정에서 김정우 전 쌍용차 노조 지부장과 권영국 변호사 등이 체포됐다. 그러다 결국 분향소는 1년7개월 만인 2013년 11월16일 경기 평택 쌍용차 공장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30번째 희생자인 해고자 김주중씨가 삶을 등진 뒤 지난 7월3일 5년 만에 대한문에 분향소가 다시 만들어질 때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쌍용차 사태 이후 9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119명의 해고자와 가족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날 조문을 마친 후 사측과 노조는 해고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재개했다. 노사는 이 자리에서 내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을 복직시킨다는 데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야 묵을 대로 묵은 고통의 시간이 끝이 보이는 것 같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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