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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백남기 농민 대책위와 4·16가족협의회가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특검 의결’ ‘강신명 경찰청장 처벌 및 국가폭력 진상규명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 당사에 들어가 단식 농성을 했었다. 백남기 청문회 개최 약속은 바로 나왔지만 세월호 가족들과 농민들은 일주일간 함께 굶었다.

아무리 기계가 편리해졌어도 뜨거운 햇볕 맞으며 오로지 몸으로 일궈야 하는 일이 농사다. 체력소모가 많아 ‘밥심’으로 버텨야 하는 일이 농사다. 무엇보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이니 밥만큼은 잘 먹고 싸우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농민운동가들이 9월10일부터 청와대 앞길에서 농정 적폐 청산과 농정 대개혁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른바 ‘국민의 먹거리 위기, 농정 적폐 청산과 대개혁을 염원하는 시민농성단’이다. 노동운동 현장이든 환경운동 현장이든 워낙 단식투쟁들을 많이 하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농민들에게 곡기 끊는 일이 얼마나 절실한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기나 할까. 

11일 화요일에는 국회 앞으로 전국에서 농민 5000명이 모여와 농민대회를 열었다. 추석을 앞두고 한창 바쁠 시기지만 급한 마음에 서울로 올라왔다. 쌀 1㎏당 3000원, 밥 한 공기에 300원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목놓아 외쳤다. 근래 쌀값이 너무 올라 물가상승의 주범이라며 호들갑을 떨곤 하지만 고작 밥 한 공기에 300원 쳐달란 요청이다.

지난 20년 넘도록 밥 한 공기 값이 200원이 될 둥 말 둥이었다. 아무리 쌀값이 뛰었다 한들 치솟는 아파트값만큼 사람들의 삶을 옥죄겠나. 그저 농민이 제일 만만해서 언론도 정치도 함부로 다룰 뿐이다.

현 정부 들어서 타당성 검증도 충분히 하지 않고 급박하게 추진 중인 스마트팜 밸리 사업도 농민들은 폐기하라고 외쳤다. 스마트팜 밸리에 선정이 되든 안 되든 농촌사회에 갈등을 일으킬 것이 뻔하다. 사업 규모나 추진 속도가 ‘문재인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될까 많은 농민들이 우려하고 있다.

자고로 농촌 주민들 입에 착 붙지 않는 화려한 이름의 사업은 유사 이래 계속 실패해왔다. 이런저런 급박한 농업 현안들이 넘쳐나지만 자칭, 촛불정부 출범 이후 농정공백이 너무 컸다. 이 공백을 메우자니 정부는 정부대로 숨이 찰 것이고 생존이 경각에 달린 농민들은 더욱 숨이 막힌다. 

그래도 농민대회는 흥겹고 흔전만전하기 마련이다. 술도 몇 순배 돌고, 떡과 고기 접시가 돌곤 하지만 이번 농민대회엔 통곡만 넘쳐났다.

9월11일은 이경해 농민이 ‘WTO는 농민들을 죽이지 말라’며 멕시코에서 자결한 날이기도 하다. 9월25일은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고 열 달간 사투를 벌이다 끝내 숨을 거둔 날이다. 며칠 전인 9월10일, 진주의 한 여성농민은 자신이 농사짓던 비닐하우스에 목을 매달았다. 청양고추 주산지여서 너나없이 시설재배를 하지만 연이은 가격 폭락으로 고단한 생활을 더 이상 견디질 못해서였다. 고인은 열정 넘치는 여성농민운동가였다. 현장 분위기 메이커로 동료 여성농민들의 배꼽을 빼놓곤 했다던데, 세상을 등지기 직전 그의 삶은 신산하기만 했다. 슬하에 아직 어린아이들 셋을 두었다는 전언엔 차마 눈을 감았다. 감히 명복을 빌겠다는 말조차 꺼낼 수도 없는 잔인한 9월이다.

야속하게도 추석 명절은 왜 또 다가오는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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