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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은 국경 밖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되살아나는 날이다. 이날은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강제 매각된 뒤 108년 만에 우리 대한민국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2012년 대한제국 옛 공사관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인 부부로부터 건물을 사들여 지금까지 공들여 복원해왔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자주국가를 꿈꾸던 고종이 최초로 서양과 수교를 맺으면서 큰 기대 속에서 등장했다. 서양 진출의 발판이 된 공사관은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참가해 대한제국을 알리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오래지 않아 대한제국과 함께 그 역할을 잃었다. 그 뒤 100여년 동안 군 휴양시설, 화물운수노조 사무소, 미국인 거주지 등으로 쓰이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워싱턴DC에 세워진 외국 공사관 중 유일하게 1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외교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로 손꼽힌다.

최근 문화재청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이 건물에 대한제국 당시 공사관의 접견실, 집무실, 공사 서재, 침실 등을 과거의 모습대로 복원했다. 3층에는 대한민국 발전상과 한·미 관계사, 공사관 변천사 등을 함께 전시해 교민은 물론 현지인들에게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리는 소중한 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다. 백악관과도 불과 1.5㎞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어 미국의 중심지에 남아있는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국외에 존재하는 우리 문화재는 약 17만점이다. 그중 1만여점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당사자 간 협의, 외국 수사기관과의 공조, 기증, 구입 등 여러 방법을 통해 2015년부터 덕혜옹주 유품, 이선제 묘지, 문정왕후어보, 현종어보, 강노 초상,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등 46점의 소중한 국외 문화재를 환수했다. 다른 기관·단체의 환수 실적까지 포함하면 총 73점이 국내로 돌아왔다.

국외소재 문화재를 환수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기증을 받기 위해서는 소장자와 장기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적정한 매입 대상을 찾아내 적정한 가격으로 사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외국 수사기관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그 문화재가 불법 반출됐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우리가 제시해야 한다. 국외 문화재들을 하루빨리 환수해오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은 잘 알지만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어려움들이 있다.

불법·부당하게 반출된 국외 문화재는 마땅히 환수되어야 한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나 국내로 들여오기 어려운 부동산문화재는 오히려 현지에서 활용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내 우리 문화를 해외에 홍보하는 자료로 쓰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바람직하다.

문화재청은 국외에 있는 동산문화재뿐 아니라 이번에 개관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경우처럼 구한말 외교공관이나 독립운동사적지 같은 부동산 문화재들을 현지에서 잘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들을 하고 있다. 국외 부동산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조사·연구하고 보존 및 활용하기 위한 중장기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훼손이나 철거 위기에 있는 중요 부동산문화재도 구입하고 관리해나갈 예정이다. 국외 부동산문화재 관련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 국민들에게 멀리 있는 우리 문화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국경 밖에 있는 우리의 역사,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는 누군가 끈기 있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밤에>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한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 사람은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은 멀리서 또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한다. 그래야 손실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국외에 있는 문화재들의 안녕을 살피는 일, 또 찾아가 말을 걸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오거나, 현지에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일, 이러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김현모 | 문화재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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