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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한나라당의 고발과 11월 검찰의 기소로 시작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재판이 1년4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검찰의 공소 내용은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안’ 폐기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과 공용 전자기록 손상죄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주장 중 많은 부분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초안의 법률 위반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하였고, 이를 감추기 위해 대통령과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안보정책비서관이 공모하여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폐기’하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모든 내용들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나 묵인 하에 이루어졌다며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을 정략적으로 공격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대통령기록물을 생산하고 관리했던 담당자로서 이번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참석하여 증언하며 재판이 있을 때마다 재판정을 찾아 참관하는 동안 가슴 아픈 시간을 보내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하고 나서 대한민국의 각종 정책들이 입안되거나 폐기되는 과정들을 참고하려 해도 공공기관에 관련된 기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했다. 대통령 기록을 담당하는 국가기록원에도 이승만 전 대통령 7000여건,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각 4만여건, 노태우 전 대통령 2만여건, 김영삼 전 대통령 2만여건, 김대중 전 대통령 20여만건의 기록만 있다. 이처럼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대통령 기록물을 남기기 위해 법안을 대통령이 직접 제안하고, 청와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지원(e知園)을 만들어 시스템화했다.

노 전 대통령은 34만여건의 지정기록(특정 기간 동안 기록을 생산한 대통령만 볼 수 있지만, 15년 정도 지나면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기록)과 9700여건의 비밀기록 등 총 825만여건의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며 국민의 품으로 보냈다.

노 전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훼손되거나 분실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고 지시했으며, 국가정보원에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녹음본이나 국가정보원이 비밀로 생산(이후 비밀 해제)한 녹취록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녹취록 초안을 폐기한 것이 기록물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비밀 기록은 최종본이 만들어지면 초안과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을 파기하는 것이 기록물 생산과 관리의 절차다. 검찰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거라 본다. 그럼에도 이번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 내내 억지 주장을 고집했다. 비밀 기록에서 해제한 뒤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는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여당 지도부에서도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는 내용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를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가운데)과 조명균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 비서관(왼쪽)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청와대 직원들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이를테면 “청와대는 기록물을 생산하는 곳이지 평가하는 곳이 아니다” “기록물 평가는 국민이, 역사가 하는 일이다. 기록물을 누락 없이 이관해야 한다”며 독려했고,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해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세계 기록 유산을 남긴 역사를 계승해 대통령과 보좌기관, 자문기관에서 정책 결정과정의 기록을 생산하고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한 노 전 대통령의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박진우 | 전 대통령기록관 정책운영과장·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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