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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경제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세수가 부족하니까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된다 하면 그것이 정치 쪽에서 국민에게 할 소리냐”고 여야 정치권을 공박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 노선 고수 방침을 분명히 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증세 없는 복지’의 파산을 선언하고 정책 수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상황에서, 이를 단칼에 거부하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외면한 채 자기만의 도그마에 갇혀 증세 논의 자체를 불온시하는 무책임한 태도다.

박 대통령의 ‘국민 배신’ 언급은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박근혜 복지’ 공약들이 줄줄이 폐기되거나 축소되었다. 무엇보다 복지 재원 부족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복지 공약 이행에 필요한 135조원을 ‘증세 없이’ 조달할 수 있다고 장담했으나 지킬 수 없다는 게 명확해졌다. 비과세 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재정을 확보한다는 계획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지난해 11조원을 비롯해 매년 세수 부족이 급증하고, 재정적자는 만성화되고 있다. 담뱃값 인상과 연말정산 등 서민증세 형태의 ‘꼼수’가 동원됐으나 세수 확충에는 턱없이 미흡하고 조세형평 논란만 심화시켰다. 이대로는 복지 공약은커녕 자연스러운 복지 재정 증가분마저 감당하기 버거운 지경이다. 어린이집 보육 예산 파동이 단적인 예다. 박 대통령 말마따나 “증세 없는 복지를 외면하는 것이 국민 배신”이라면, 철석같이 약속한 복지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민 배신 아니고 뭔가.

9일 오전 박근혜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말씀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기어코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고수하겠다면, 복지 재정 수요와 재원 조달 능력 간 격차를 해소할 마땅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실현성이 요원한 ‘경제활성화를 통한 세수 확보’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가 파산 지경에 이른 데 대한 책임은 대통령과 여당에 있다. 애초 실천 불가능한 약속을 내세웠던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여당에서는 뒤늦게나마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며 현실을 직시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허구의 ‘증세 없는 복지’만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있으면, 모처럼 공론화 계기를 마련한 조세와 복지 체계의 개혁은 난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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