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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전기요금 누진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누진제는 더운 여름 에어컨을 켜지 못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집중 공격을 받았고,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 한시적으로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정책이 발표되었다. 당·정 태스크포스도 꾸려져 연말까지 개편안을 만든다고 하니 일단 어떤 정책이 나올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쟁은 올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들의 주택용 누진제 완화를 비롯해서 산업계와 교육계에선 산업용과 교육용 전기요금 인하를 주장해왔고, 농업계는 값싼 농업용 전기 공급 확대를 요구해왔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선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베란다에 에어컨 실외기가 빼곡하게 설치돼 있다.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지만 누진제 때문에 전기요금이 부담돼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 가정이 많다. 작은 사진은 국민안전처가 보낸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폭염 안내문자. / 서성일 기자
하지만 이와 같은 요구는 매년 여름과 겨울, 날씨에 따라 며칠 논의되다가 사그라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정부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에 대한 제대로 된 공청회 한 번 진행하지 않았고, 내부 논의만 거쳐 그때그때 달라진 전기요금표를 공개하는 것으로 문제를 수습해왔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 문제를 제대로 보려면 현재 전기요금을 책정하는 방식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전기요금은 한전이 제출한 전기요금 약관을 전기위원회가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2001년 설립된 전기위원회는 전기사업의 허가, 요금 조정 및 체계, 전력시장 및 전력계통 운영 감시, 소비자 권익보호 등을 위해 만들어진 규제기관이다.
문제는 이 전기위원회가 ‘소비자 권익보호’ 같은 고유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채 정부 정책의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기위원회는 산업부 산하위원회로 구성되어 있고, 한 명뿐인 상임위원은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이 겸임하고 있다. 사무국장을 비롯한 자리는 산업부 출신들로 메워져 있다.
전기요금과 발전소 인허가를 다루는 전기위원회 회의는 간단한 결정 내용만 공지될 뿐 회의 자료나 속기록 등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산업부의 주요 역할이 전력산업의 진흥과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산업부는 전력산업 진흥과 규제, 즉 선수와 심판을 모두 맡고 있는 것이다.
주요 산업에 대한 진흥과 규제가 적절히 역할을 하는 것은 국민 권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 규제기관의 독립과 투명성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방송과 통신을 규제하는 방송통신위원회나 핵발전소의 안전을 규제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성·투명성이 강조되는 것은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같은 규제기관이지만 방송통신위원회나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전기위원회는 아직도 진흥 부서에 종속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전기요금 논란은 폭염과 가정용 누진제 완화 문제로 시작되었다. 지금도 인터넷상에는 폭염에 늘어난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누진제 개편 논의는 차분하고 폭넓게 진행되어야 한다. 누진제 완화로 전체 70%에 달하는 전력 저소비 가구의 전기요금은 올라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나, 과다한 전력을 사용하는 가구에 대한 대책은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점은 차분히 따져보아야 할 주제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매번 여름철마다 전기요금 문제로 온 국민이 홍역을 앓을 수는 없다. 투명한 전기요금 원가 공개와 공정한 요금 결정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진행되어야 할 것은 현재 전기요금을 책정하고 전력사업을 규제하는 전기위원회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전기위원회의 독립성 제고와 투명한 전기요금 산정과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전기요금은 정치 논리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려 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전기 소비자인 온 국민들에게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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