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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클롭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거인으로 호머의 <오디세우스>에도 등장한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고향으로 가던 중에 식량을 얻으려 부하들과 함께 어느 섬에 도착했다. 이 섬에는 키클롭스라고 하는 외눈박이 거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한 키클롭스가 살고 있는 동굴에 잘못 들어갔다. 이 외눈박이 거인은 부하들을 하나하나씩 잡아먹었다.
그러자 오디세우스는 꾀를 내어 키클롭스의 외눈을 찔러서 앞을 못 보게 한 다음 섬을 빠져나왔다.
동물 중에서 한 개의 눈으로 시력을 얻는 경우를 키클롭스 눈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귀를 가지고 청력을 얻는 경우를 키클롭스 귀라 한다.
사마귀는 가슴의 배 쪽에 하나의 귀를 가지고 있다(화살표). 사마귀는 이 키클롭스 귀를 이용해 다가오는 박쥐의 초음파를 탐지할 수 있다. (출처: 경향신문 DB)
그러나 키클롭스 눈이나 키클롭스 귀를 가지고 있는 동물은 거의 없다. 동물들은 눈이 최소 2개 있어야 입체적인 상을 얻을 수 있고,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 그래서 상을 맺는 눈을 가지고 있는 동물 중에서 눈이 하나인 경우는 없다.
또 동물들은 귀가 최소 2개 있어야 소리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음원에서 양쪽 귀에 도달하는 소리의 시간 차이와 세기 차이를 이용해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재미있게도 사마귀는 키클롭스 귀를 가지고 있다. 사마귀는 가슴의 아래쪽에 귀가 하나 있다. 사람으로 치면 앞가슴 한가운데 귀가 있는 셈이다.
사마귀가 키클롭스 귀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물론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그런데 왜 사마귀는 소리의 방향도 알 수 없는 키클롭스 귀를 가지고 있을까?
사마귀는 주행성 시각 포식자이다.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 동물들은 주로 시각에 의존해 먹이나 짝을 찾는다. 사마귀의 머리는 삼각형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인데, 삼각형의 양쪽 끝에 잘 발달된 겹눈을 가지고 있다.
사마귀는 또 매복 포식자이다. 식물의 잎이나 꽃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먹이가 나타나면 강력한 앞발을 이용해 먹이를 낚아챈다. 사마귀는 뛰어난 시력 덕택에 풀숲의 무시무시한 포식자이다.
주행성 동물은 주로 시각 포식자에 대비한 방어책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포식자 방어는 은폐 색이다. 사마귀는 은폐 색으로 녹색이나 갈색을 띤다. 또 이런 체색은 먹잇감이 사마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여 사냥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일부 사마귀는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다. 주로 꽃에 살고 있는 사마귀들이 그러한데, 이런 색도 기본적으로 은폐의 기능을 한다.
풀숲의 두려운 존재인 사마귀도 약점이 있다. 많은 사마귀는 날개가 잘 발달되지 않았거나 아예 없기도 하다. 날개가 잘 발달된 사마귀 종이라 하더라도 비행은 서툴기만 하다.
만약 사마귀가 낮에 비행을 하면 새들의 쉬운 먹이가 될 것이다. 그래서 사마귀는 밤에 비행해 이동한다.
현재 장소에서 먹이를 찾기 어려울 경우 사마귀는 비행해 다른 식물로 이동한다. 수컷은 짝짓기를 위해 암컷을 찾아 비행하기도 한다.
밤하늘을 지배하는 왕자는 박쥐다. 곤충은 지구상에 4억년이 넘게 존재해온 가장 오래된 육상동물 중 하나이다. 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지구에서는 곤충만 소리를 만들고,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포유동물이 본격적으로 번성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9000만년 전 지구상에 등장한 박쥐의 존재는 밤하늘의 곤충에게 암울한 소식이었다. 초음파를 이용해 곤충을 탐지하기 때문에 박쥐는 어둠 속에서도 곤충에게 다가가 낚아챌 수 있다.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곤충들도 박쥐의 공격에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이들은 박쥐의 초음파를 탐지할 수 있는 귀를 진화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밤나방이다. 밤나방은 복부 첫 번째 마디에 고막이 한 쌍 있는데 조잡하기 그지없다. 청신경이 겨우 두 개뿐이어서 소리를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밤나방이 필요한 귀는 복잡한 대화를 듣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귀가 아니다. 박쥐의 소리만 듣고 피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그리고 밤나방의 엄청난 다양성과 분포를 보면 밤나방의 귀는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사마귀의 키클롭스 귀도 훌륭한 청각과는 거리가 멀지만 본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박쥐가 초음파를 이용해 접근하면 사마귀는 전투기 회피전술을 이용한다. 갑자기 속도를 멈추고 아래로 급전직하한다. 박쥐는 떨어지는 사마귀도 추적해 잡아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마귀는 이 점도 감안해 자유낙하가 아닌 가속도 낙하를 한다. 사마귀의 전투기 회피전술은 키클롭스 귀 덕에 가능하다.
밤에 활동하는 곤충과 박쥐 간의 쫓고 쫓기는 군비경쟁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밤나방의 조잡한 귀나 사마귀의 키클롭스 귀를 보면 반드시 완벽한 형질이 생존과 번식의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충실히 기능을 수행하는 형질이 있고, 그 형질 덕에 충분한 수가 살아남으면 그 생명체는 번성할 수 있다.
장이권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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