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간통죄 폐지를 바라보는 남녀의 시각 차이가 크다.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위헌 결정 이후 시행된 두 여론조사는 모두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남성은 헌재의 결정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게 맞섰다. 여성은 반대가 60% 이상으로 찬성보다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즉, 간통을 더 이상 범죄로 다스리지 않음을 우려하는 쪽은 주로 여성이었다.

묘한 상황이다. 간통죄 폐지를 열렬히 환영해야 할 당사자는 바로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가시 돋친 질문이 하나 나올 법하다. “간통죄 폐지가 특히 여성에게 기쁜 소식이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이람? 1953년에 제정된 우리 형법은 간통을 저지른 배우자가 남편이건 아내이건 간에 똑같이 처벌하게 했거든요!” 맞는 말이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전통적으로 모든 사회에서 간통은 유부녀가 외간 남자와 성관계하는 행위로 규정되었고 범죄로서 처벌받았다는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서야 일부 국가에서 유부남의 혼외 성관계도 처벌하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제한적이어서, 유부녀의 외도를 유부남의 외도보다 더 무겁게 벌하는 이중잣대가 지난 세기까지 대다수 국가의 법률에 명문화되어 있었다. 유부남의 외도를 더 무겁게 벌한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왜 세계의 여러 전통 법률들은 유부남은 내버려 두고 오직 유부녀의 혼외 성관계만을 엄히 다스려야 할 범죄로 보았을까? 진화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남성이 아내를 마치 자기 소유물처럼 여기는 심리를 진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식을 거의 돌보지 않는 다른 포유류 수컷들과 달리, 인간 남성은 기특하게도(?) 아내와 가정을 꾸려서 오랫동안 자기 자식에게 자원과 애정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배우자 중에 한쪽이 잠시 외도를 저질렀다고 가정해 보자. 그에 따른 영향은 남녀에게 다르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면, 남편은 생판 모르는 남의 자식에게 자신의 소중한 자원을 고스란히 낭비하는 대재앙을 겪게 된다. 반면에 아내는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다 해도 자신이 아이들의 친엄마라는 사실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아내가 정작 경계해야 할 상황은 남편이 혼외 상대에게 정서적으로 깊이 빠진 나머지 어느 날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투자를 끊겠노라고 선언하는 경우다.


아내의 단 한번 불장난으로도 남편은 파국을 맞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남편은 아내를 밤낮없이 성적으로 단속하고 지키려는 심리를 진화시켰다.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는 것이다. 재산법에 따르면, 소유자는 자기 물건을 마음대로 팔고 교환하고 망가뜨릴 수 있다. 누군가 내 물건을 훔치거나 훼손했다면, 그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내 주장에 모든 사람이 동의해준다. 남성들은 자기 아내도 동일하게 취급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 시리아, 극동, 아프리카, 아메리카, 북유럽 문명의 법률에는 아내를 남편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조항이 거의 똑같이 들어 있었다. 간통은 연애의 경쟁자인 외간 남자가 남편의 소유물을 훔치는 범죄였다. 피해자인 남편은 간통한 아내를 때리거나, 외간 남자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정당하게 인정받았다. 간통죄는 우리 최초의 법인 고조선의 8조법금에도 들어 있었다고 종종 언급되지만, 단언컨대 그 조항은 유부녀의 외도만 처벌했을 것이다. 간통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adultery도 ‘불순물을 섞다, 질이 낮아지다’는 뜻의 동사 adulterate에서 유래하였다. 간통이 아버지로서의 확실성을 낮춘다는 것이다.

간통을 범죄로 다스릴 뿐만 아니라, 과거의 전통 법률은 아내의 간통을 알게 된 남편이 행사하는 폭력을 약하게 처벌하거나 심지어 눈감아 주었다. 수백년 전 영국에서는 간통 중인 아내를 그 자리에서 죽인 남편은 살인이 아니라 과실치사로 처벌받았다. 미국의 배심원들은 감형조차 너무 무거운 형벌이라고 여겨서, 간통한 아내를 현장에서 살해한 남편은 무죄로 풀어주었다. 19세기에 들어서 유부남의 외도도 처벌받게 되었지만, 간통한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적 보복은 특별히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로 비교적 최근까지 인정되었다.

요컨대 간통죄는 과거에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하던 도구였다. 배우자의 혼외정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끔 진화된 쪽이 남편임을 고려하면, 남녀 쌍벌주의를 채택했던 우리 형법의 간통죄조차 결과적으로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일례로 중앙일보는 지난해 6~9월에 선고된 간통사건 92건 가운데 남편이 간통한 아내를 고소한 사건이 60.9%로 다수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헌법재판소는 간통죄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간통죄로 배우자를 고소하려면 이혼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가정을 보호하는 데도 간통죄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몇 년간 사문화되다시피 했지만 본질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장치였던 간통죄를 공식 폐지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양성평등을 한 걸음 진전시켰다는 칭찬도 해줄 만하다.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