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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기고]두더지 잡기 게임

opinionX 2018. 10. 4. 15:13

두더지 잡기 게임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스트레스 해소용 게임이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구멍에서 갑자기 툭 튀어오른 두더지의 머리를 망치로 때린다. 이 구멍 저 구멍에서 두더지가 머리를 내민다. 불이 켜진 두더지의 머리를 정확히, 빨리, 많이 때려야만 점수가 올라간다.

두더지 잡기 게임을 끝내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통쾌함과 함께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만약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 머리를 때리는 게임을 만들었다면 동물보호단체의 항의가 빗발치지 않았을까? 두더지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게임을 사람들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더지는 지하에서 살고 밤에만 가끔 땅 위에 나타난다. 일상에서 거의 볼 수 없을뿐더러 호감이 가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반려동물이 될 수도 없고 사람에게 득도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일종의 혐오 동물이다.

비행청소년들의 범죄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언론은 두더지 잡기 게임을 시작하고 여론은 망치를 집어 든다. 두더지가 왜 땅 위로 고개를 내미는지는 상관없다. 주어진 시간에 두더지의 머리를 많이 때리는 게 중요하다. 두더지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행위의 목적은 두더지를 원래 살고 있는 땅속으로 밀어넣는 데 있다. 스트레스를 풀고 잠시 억눌린 감정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경향신문과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 주최로 지난 15일 서울 마포청소년문화의집에서 열린 시민토론에서 참가자들이 청소년 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추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창길 기자

10대들의 범죄에 관해 대다수 언론은 일부 소년범죄의 흉악성과 엄벌 여부에만 초점을 맞춘 자극적인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여론은 대안 없는 엄벌만을 요구한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에 비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했기 때문에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춰야 한다.” “요즘 애들은 영악해서 소년법을 악용한다. 소년법을 폐지해서 성인들과 똑같이 처벌해야 한다.” “사회방위를 위해 사회와 격리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전체 소년범죄 중 흉악범죄는 1%이다. 소년법을 악용한다는 촉법소년의 범죄도 1%다. 실제 흉악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은 형사재판에서 대부분 실형을 선고받는다. 최대 20년까지도 선고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조차 국민의 법 감정을 충족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니, 소년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해서 소년범죄에 대한 전반적인 처벌을 강화하자는 여론이다.

‘소년범죄 처벌 강화’를 주제로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한 고교생은 이렇게 말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조성한 사회를 보며 자랍니다. 이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쳐서 청소년들이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를 조금만 바꿔보면 청소년 범죄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물론 어른들은 말한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해서 누구나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두더지가 사는 컴컴하고 낯선 땅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고 두더지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할 순 없다. 어쩌면 어른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게임이 끝난 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로 돌아와서도 두더지와 마주쳐야 한다는 삶의 냉혹함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이 냉혹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지 않기를, 소통과 공감을 통한 혁신적인 토론이 계속되기를 기대해본다.

<최원훈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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