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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들로 구성된 ‘제주도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화조사위원회’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원 불허를 원희룡 제주지사에게 권고키로 했다고 4일 밝혔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는 2015년 12월 중국 부동산그룹인 녹지그룹의 녹지국제병원 설립 신청을 승인해 의료공공성 붕괴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녹지그룹은 지난해 8월 병원 건물을 완공하고 의사와 간호사 등 직원도 채용해 11월 최종 허가권자인 제주도에 개원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반대 의견이 거세자 제주도는 지난 4월 이 사안을 공론화위에 넘겼고, 제주도민들은 개원 불가를 선택한 것이다. 병원이 설립되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여지가 있음에도 불허 결정을 내린 제주도민들의 높은 시민의식을 평가한다.

공론화위에 따르면 숙의토론에 참여한 180명의 제주도민 중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하면 안된다고 한 비율이 58.9%로, 허가해야 한다는 비율(38.9%)보다 훨씬 높았다. 개원 불허의 가장 큰 이유로 ‘다른 영리병원들의 개원으로 이어져 의료의 공공성이 약화할 것’(66%)이라고 꼽은 것은 의미가 깊다. 투자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는 영리병원은 의료비 상승, 의료 양극화, 건강보험체계 훼손 등의 우려가 제기돼 왔다. 영리병원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데다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이유로 비싼 병원비를 받을 것이 뻔하다. 외국인 환자를 주고객으로 한다지만 내국인도 건강보험 혜택을 포기하면 진료가 가능하다. 돈 있는 환자들이 영리병원으로 몰리면 세계에서 공공성이 가장 높다는 건강보험체계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영리병원에 환자를 뺏기는 다른 병원들도 현행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최대한 영리병원식 운영을 따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영리병원의 비싼 병원비가 다른 병원으로도 확산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영리병원은 일단 국내에 처음 설립되면 급속히 번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현행법상 영리병원은 자본금 50% 이상만 외국인이 투자하면 제주를 비롯해 인천 송도 등 8개 경제자유구역에서 설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녹지국제병원 설립이 의료영리화의 ‘문’을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녹지국제병원 설립은 제주도민뿐 아니라 전 국민의 문제다. 향후 원희룡 지사는 공론화위의 권고를 참고해 녹지국제병원 허가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원 지사는 제주도민들이 내린 결정을 존중해 병원 설립을 불허해야 한다. 그리고 이왕 만들어진 녹지국제병원은 비영리병원으로 전환해 제주도민들을 위한 병원으로 거듭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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