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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아이가 우주공학자가 되고 싶어 한다고? 미국이나 중국처럼 강대국이면 모를까. 한국에서 전망이 있나?

-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우리 애 말 들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우주공학도 분야가 여러 가지인데, 20세기에 미국하고 소련이 체제 경쟁을 하느라고 돈을 무지막지하게 쏟아붓는 바람에 아주 비싼 거대 장치산업이라는 선입견이 생겼다는 거야.

- 그거야 미국이 먼저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내면서 끝난 얘기지. 소련의 완패지.

- 그래. 그런데 나사(NASA·미국 항공우주국)는 예산 펑펑 쓰다가 그 뒤로는 점점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존재감도 줄어들었다는 거야. 예정됐던 아폴로 달착륙 계획도 원래 20호까지였는데 17호 이후로는 다 취소되고. 나사는 자기 밥그릇 줄어드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우주왕복선이나 우주정거장처럼 돈 먹는 하마 같은 프로젝트를 자꾸 벌인 거지. 그래서 우주개발이란 돈 많이 드는 산업이라는 선입견이 굳어진 거고.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 에이,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우주선은 아무 나라나 못 만들잖아.

- 만들기야 많이들 했지. 인도도 만들었고 북한도 만들었고 뉴질랜드도…. 우리나라도 성공했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선 만드는 걸로는 수지타산 맞추기가 어렵다는 거지.

- 그래, 바로 그거야.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산업으로 지속가능해야 일자리도 계속 생겨나지.

- 그런데 우주개발이라고 해서 꼭 우주선 만드는 것만 생각하는 게 잘못된 거야. 우주선이야 발사체니까 인공위성이든 사람이든 우주까지 운반해주는 일만 하면 되는 거고, 사실 그다음부터 파생되는 여러 가지 기술이 진짜 전망이 좋다는 거야.

- 그래? 우주에 나가서 뭘 하는데?

- 달에 헬륨3라는 물질이 아주 많은데 이게 에너지 자원으로 아주 유용하대. 소행성들을 탐사해보면 지구에서는 귀한 희토류 광물들도 많다 그러고.

- 우주광산 개발이라…. 그런 기술이라고 쉬울까?

- 그것 말고도 많아. 무중력 상태에서 공장을 돌리면 지구에서 돌리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라고 하는군. 중력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중공업 분야도 에너지 절약이 많이 되지. 볼베어링 같은 걸 깎을 때도 쇳물이 표면장력 때문에 저절로 동그란 모양이 되니까 연마하는 데 훨씬 비용이 적게 들고.

- 그러니까 우주선 만드는 것보다 우주에서 뭐든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전망이 좋다는 거구먼?

- 그렇지! 인공위성이 좋은 예야. 우리나라가 인공위성 수출국인 거 알고 있나?

- 그래?

- 우리나라 인공위성 제작기술이 축적된 지 30년 가까이 된다고. 아무튼 광산이든 공장이든 바이오든 뭐든 간에 무중력이나 미소중력 환경에서 구현시키는 기술들은 아직 세계적으로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이미 이 분야의 벤처기업들도 많이 생겼다고 하더군. 제작비와 유지비를 최소화하는 적정기술 개념으로 다들 접근한대. 딸아이가 아주 꼼꼼하게 많이 알아봤더라고. 어릴 때부터 SF를 너무 좋아해 좀 걱정할 정도였는데, 오히려 잘했구나 싶어.

- 흠…. 얘길 듣고 보니 좀 감이 잡히네. 사람들은 우주라 그러면 아직도 옛날 아폴로 시절만 생각하는데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이거지.

- 아폴로 시절 타령은 우리 같은 꼰대들 얘기야. 요즘 젊은 친구들은 뭔지도 몰라. 그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 얘기잖아. 요즘은 <그래비티> <마션> <인터스텔라> 같은 우주 SF들에 더 익숙하지. 20세기 냉전시대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해 비장하게 우주개발에 나서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순수하게 우주를 향한 원초적인 동경을 지니고 그걸 실현시킬 수 있는 세대가 등장한 거야.

이달 말이면 한국형 로켓 엔진을 단 우주선이 처음으로 시험 발사된다. 앞서 세 번 만에 성공했던 2013년의 나로호는 러시아 엔진을 단 것이었지만, 이번에 시험 발사되는 누리호는 100% 국산 기술로 만들어진 발사체이다.

누리호가 성공하고 계속 기술 개발이 이루어져도 사실 세계 우주발사체 시장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러시아나 유럽, 미국 등의 검증된 많은 로켓들이 안정된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론 머스크의 우주개발기업인 스페이스X에서 개발한 로켓은 재사용이 가능해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우주개발 분야에서 활로를 개척하려면 우주발사체 개발 못지않게 우주공간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무중력 응용공학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발사체 개발에 비하면 실험설비 등 구축에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드는 반면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달에 마지막으로 인간이 다녀온 지 46년이 지났다. 공백이 꽤 길었지만, 결국 인류는 금세기 중에 다시 우주로 진출할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우주시대는 20세기와 비교하면 과학기술 수준은 물론이고 대중들의 정서적 태도도 많이 다를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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