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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윤철호)와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강맑실)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예산 낭비적인 사업을 일방적으로 진행한다”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이기성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퇴진을 재차 압박했다. 두 단체는 지난 7월에도 “이기성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은 즉각 퇴진하고,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진흥원을 정상화하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기성 원장은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다. “출판을 진흥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하던 박근혜 정부 시절 ‘출판 통제’의 일환으로 임명된 인사”, 즉 구인물이란 게 퇴진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얘기다. 한편,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으로 문제가 됐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의 사표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 취임 직후 수리된 바 있다.
두 단체는 첫 번째 공동성명서에서 이 원장이 “출판진흥기금 조성, 공공도서관 도서구입비 증액, 저작권법 개정과 판면권 문제, 도서구입비 세제 혜택, 송인서적 문제 등 시급한 출판 현안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활동도 의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각종 예산 낭비, 원장과 특수관계에 있는 사업에 대한 편파적 지원 등으로 하는 일마다 구설에 오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예산 집행권을 바탕으로 민간 출판단체들이 벌여온 출판 교육사업을 무력화하는 등 진흥원이 출판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두 단체의 공동성명서에 나오는 내용을 시시콜콜 다 알 수야 없지만, 진흥원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이하 ‘제작지원’)에 대해선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만큼 할 말이 있다는 얘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이 오리무중인 데다 진흥원의 각 분야 저자 및 출판사에 대한 제작지원 사업이 그야말로 로또 수준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지난 6월 말 진흥원이 발표한 2017년 제작지원 선정작은 63편이다. 응모작은 선정작의 40배쯤인 2508편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응모작의 고작 2.5%쯤만 선정하는 제작지원인 셈이다. 말이 좋아 지원이지 그쯤 되면 신춘문예나 문학상에서 당선작으로 뽑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가히 로또 수준의 제작지원이라 할 만하다.
제작지원 사업 목적은 ‘우수출판콘텐츠 발굴’과 ‘출판 내수 진작’이다. 일단 2508편 응모작 중 고작 63편을 선정한 것은 ‘우수출판콘텐츠 발굴’은 될지 몰라도 ‘출판 내수 진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고작 63편 발간이 얼어붙은 출판시장에 아연 활기를 띠게 하리라 생각하는 출판인이나 저술가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작지원은 인문교양·사회과학·과학·문학·아동 등 5개 분야의 ‘기간 내 도서로 발간 가능한 원고 또는 기획안’을 응모받아 선정작에 각 1000만원(출판사 700만원, 저자 30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작 63편 선정은 예산이 6억3000만원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출판된 책을 일정량 구입·지원하는 ‘세종도서’ 사업이 있다곤 하지만, 어느 한 분야만이 아니고 인문교양·사회과학·과학·문학·아동 등 출판 전반에 대한 정부 주도의 활성화 사업이 그 정도라면 대기업 메세나보다 못하지 않나?
더 의아한 것은 올해의 확 줄어든 예산이다.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실시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해마다 예산은 14억원으로 140편씩 선정됐다. 블랙리스트 여파로 예산이 반토막 이하가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제작지원이 로또 수준으로 전락한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선정에서 탈락한 2445편의 저자들이 가질 자괴감 내지 상실감이다. 탈락을 계기로 더 분발할 저자도 있겠지만, 많은 지원자들이 ‘내 글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하는 자괴감 내지 상실감으로 술깨나 마신다면 그것이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그야말로 로또 수준으로 전락한 제작지원의 예산 확대와 지원 방식이나 규모 등 전반적 개선책이 시급하다.
<장세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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