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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제프 벡은 1985년 신작 앨범을 발표한다. 무려 4년 만에 등장한 음악적 결과물이었다. 기자가 물었다. 왜 그리 오랫동안 음반제작을 하지 않았느냐고. 제프 벡은 태연스럽게 답변한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무명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길거리와 연주장에서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자신보다 기타를 잘 치는 음악가가 수십 명에 달했기에 절치부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2001년 세상을 떠난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 그는 뛰어난 창작능력에도 불구하고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라는 쌍두마차가 버티는 그룹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한다. 이후 솔로 음반을 통해서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역량을 마음껏 펼친다. 그는 음악가인 동시에 종교인이자 평화주의자로 거듭난다. 1971년 조지 해리슨은 뉴욕에서 기아에 허덕이던 방글라데시인을 위한 자선공연을 펼친다.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모진 학대를 당한다. 그는 피아노 꿈나무 양성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고통의 객관화에 성공한 것이다. 90살의 나이에도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는 피아니스트의 일갈이 인상적이다.

소개한 음악인은 모두 자기검증이라는 불편한 진실게임과 마주했던 인물이다. 유명인사에게는 명예라는 족쇄가 파파라치처럼 따라다닌다. 그들에게 명예란 대중의 기억으로부터 잊혀지는 날까지 감당해야만 하는 통과의례이다.

한편 영화 <대부2>에서는 청부살인 혐의에 시달리는 마피아 두목 마이클 콜레오네가 등장한다. 그는 청문회장에서 자신은 살인과 무관한 사회사업가라고 말한다. 이후 자신의 변호사와 합작하여 군부대에서 보호 중인 살인사건의 증인을 자살에 이르게 만든다. 게다가 자신을 해치려 했던 친형을 부하를 시켜 암살한다. <대부3>에서 마이클 콜레오네는 이러한 범법행위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였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마이클 콜레오네 역시 자기검증을 실천했던 인물일까. 그렇다는 의견에 한 표를 던진다. 그는 <대부1>에서 마피아 두목의 자리를 물려받는 존재로 등장한다. 1세대 마피아 두목이던 돈 콜레오네는 막내아들이 폭력의 세계로 빠져드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결국 마이클 콜레오네는 자신의 판단과 의지로 마피아의 세계에 입성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배타적 자기합리화를 반복한다.

여기서 두 가지 형태의 자기검증을 엿볼 수 있다. 소개한 음악가의 자기검증은 유명인과 개인의 삶을 분리하는 가치재로 쓰여진다. 제프 벡의 자기검증은 음악적 진보라는 방향타로 작용한다. 시모어 번스타인과 조지 해리슨의 그것은 사회와 인류에 기여하는 동력으로 화한다. 이들의 자기검증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방향타를 제시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반대로 마이클 콜레오네의 자기검증은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결과를 낳는다. 그는 자신의 형제와 동료를 살해하면서까지 마피아 보스라는 상징물에 집착한다. 대부는 이 세상에 못 죽일 인간이란 없다고 자조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형태의 죽음은 현실에서도 수없이 목격할 수 있다. 권력투쟁의 역사에서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정신적 육체적 살인을 자행하는 권력자의 자기검증이란 억지 합리화의 수단에 불과하다. 총칼을 앞세워 언로를 틀어막았던 20세기의 흑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시대의 통치방식은 조금 다르다. 총칼을 뒤로 숨긴 채, 진실을 말하려는 자의 밥줄을 끊어버리는 경제적 살인을 자행한다. 내용만 다를 뿐 올바른 형태의 자기검증을 무시한 악의적인 처사임이 분명하다. 

개인을 넘어선 집단의 비뚤어진 자기검증 또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다수결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소수자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정상적인 자기검증의 과정에서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과 직면해야만 한다. 시모어 번스타인과 마이클 콜레오네. 그들의 노년기는 욕망을 해석하는 시각에서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자기검증의 현상학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진행형이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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