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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기고]리더의 언어

opinionX 2017. 6. 2. 10:25

언론인 홍사중씨가 쓴 <리더와 보스>라는 책이 있다. 1997년에 초판 출간되어 지금까지 판매되는 스테디셀러이다. 저자는 리더의 언어는 설득력과 정확성과 감동이 있어야 하며 논리와 실천이 따라야 성공한다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한 말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아마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 말에는 공감했을 것이다.

미국 닉슨 대통령은 “혓바닥의 매끄러움과 사고(思考)의 깊이는 반비례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공자는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사람치고 어진 사람이 드물다”고 했다. 리더의 언어는 영향력이 크기에 신중하고 쉬워야 한다.

내가 들은 리더의 말 중에 좀 생경했던 것은 ‘미필적 고의’ ‘선한 의지’ 같은 것이었다. 법률·철학적 전문용어를 쓰는 사람은 왠지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내 주변에도 같은 말을 어렵게 쓰는 사람이 많다. “저 사람 하는 짓은 못마땅해”라고 해도 될 것을 “저 사람 행동은 우리 기준에 합당치 않아”라든가 합목적성, 규준(規準), 통섭(統攝) 같은 잘 쓰지 않는 말을 쓰는 것은 지적 허영의 표출이다.

리더의 언어는 적절한 비유와 여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는 모두 비유의 달인이었다. 모택동은 2인자였던 임표가 배신하고 가족과 함께 비행기로 탈출했다는 보고를 받고 지시를 기다리는 부하들에게 “하늘에서 비가 내리려 하고, 홀어머니는 시집을 가고 싶어 하네”라는 중국 고사를 말했다. 막으려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멋지게 표현하는 리더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리더가 태연해야 사람들이 안심하고 동요하지 않는다.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관군이 고전할 때 진압군 사령관 오명항이 군기를 느슨하게 하자 부하 장수들이 따졌다. 오명항은 “100년 이상 전쟁이 없었는데 갑자기 조이면 오히려 더 큰 사고 난다”면서 너그럽게 군율을 시행해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영화 <킹스 스피치> 스틸 이미지

리더의 언어는 감동을 주어야 한다. 1986년 1월28일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도중 폭발해 7명의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었다. 생중계로 발사과정을 지켜보던 미국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대국민 연설을 한다.

“가슴 깊이 비통합니다. 일곱 영웅을 애도합니다. (중략)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때로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납니다. 미래는 소심한 자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용감한 자에게 속한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결코 그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지상의 굴레를 벗어나 하나님의 얼굴을 만지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이 연설은 리더의 역할과 언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어려울수록 국민에게 다가가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기운을 북돋아주어야 한다. 지금은 말이 없으면 정치가 되지 않는 시대이다. 최근 대선 TV토론에서 후보들의 말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고 단호하며 점잖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다.

사람 좋고 능력도 있는 것 같은데 말주변이 없어서 손해를 보는 리더가 많다. 전문가까지 옆에 두고 스피치 훈련을 받는 리더도 많다.

<킹스 스피치>란 제목으로 영화화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는 말 더듬이였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전시 연설로 영국민의 사기를 올려 승리로 이끌었다.

청산유수 말솜씨보다는 진정성 있는 어눌한 언어가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여기에 실천이 뒤따른다면 금상첨화다. 우리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유머와 윤기가 없는 연설을 했다.

문 대통령 취임사를 계기로 재미없고 팍팍한 현실에서 고생하는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는 리더의 언어를 고대한다. 물론 실천이 꼭 따른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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