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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비둘기 집을 철거했다. 둥지는 에어컨 실외기 틈에 있었다. 둥지라기보다는 딱딱하게 굳은 똥 무더기였다. 창틀에 매달려 여기저기 싸질러 놓은 똥을 긁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물청소라도 해야 하나 싶었지만, 똥물이 아래층을 거쳐 사람들 다니는 통로로 떨어질 것이어서, 되는 대로 둥지와 똥딱지만 겨우 들어내고 실외기 주변으로 그물을 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아랫집을 내려다보니 둥지를 튼 우리 쪽 형편이 차라리 나았다. 우리 집이 안방이라면 아랫집은 푸세식 화장실. 실외기 쪽은 물론, 창문이고 창틀이고 난리가 아니었다. 뒤늦게 아파트 단지 내에서 우리 집이 꽤나 원성을 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옆집 윗집 아랫집, 아랫집에 아랫집. 그 아래 통로를 지나다가 똥벼락을 맞았다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단지 내 주민들이 비둘기들로부터 자기 집을 방어하느라 애를 쓰고 있을 때, 무심하게 집을 방치한 402호 때문에 괜한 피해를 보고 있었다는 것. 벨을 눌러봐도 응답 없는 빈집. 사람이 살기는 사나.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기에 제 집 하나 관리를 못하고 이런 지경을 만드나. 참다못한 주민대표와 관리인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마침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을 포착하고 방문했을 때에야, 내가 비둘기와 더불어 흉흉한 소문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몰랐어요. 각종 장비를 들고 나타난 그들 앞에서 나는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렸다. 창고로 쓰니까 이쪽으로 올 일도 별로 없고 뭐가 있나 유심히 살필 일도 없고 어쩌고저쩌고 변명이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둥지에 웅크리고 있던 비둘기가 어물쩍거리다가 이내 자리를 피해 날아갔다. 정수리 부분에 솜털이 조금 남아 있는 상태의 어린 비둘기였다. 아예 여기서 깨어난 놈들이네. 이거봐, 이거봐. 그냥 두면 또 와서 새끼 까고 그 새끼가 또 와서 새끼 까고 그니까, 아예 쥐약을 놔서 다 잡아 죽여야 한다니까요. 두 손을 모으고 네네 응대를 하면서 내가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범인인 것도 같고, 범죄모의에 가담한 잠재적 범죄자인 것도 같았다. 죄를 지은 것은 내 집을 무단점령하고 똥을 싸질러댄 비둘기들인데 말이다.

사실 나는 모르지 않았다. 지난봄 부산히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내가 그곳을 확인했을 때에는 이미 알에서 새끼가 막 깨어난 상태였고, 비둘기 새끼가 그리 어여쁜 모습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웬만한 새끼들은 다 예쁘던데 참 이렇게까지 징그럽게 생긴 새끼 새가 있을까. 그걸 치워버린다 해도 죄책감 같은 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해충을 박멸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하지 않고도 관리실에 도움을 요청해 처리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모른 척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쪽에 신경을 꺼버렸다. 그랬더니 그냥 잊혀졌다. 잊고 살았다. 생명이고 뭐고 그런 생각에 미쳐서 행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냥 생각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비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싫어한다. 더럽게 싫어한다. 길을 걷다가 비둘기를 보면 멀찍이 피해 다닌다. 푸드덕 날아오르기라도 하면 무슨 기생충이나 벌레 같은 게 옮겨 왔을까봐 노심초사 옷을 털어댄다. 쓰레기통이나 헤집고 다니는 날개 달린 쥐새끼들이라고 욕을 해댄 적도 있다. 새똥이 얼마나 독한지 그 똥이 어떻게 쇠를 부식시키고 건물을 망가뜨리는지는 누구라도 수긍할 만한 혐오사유다. 그러니까 그때 처음 둥지를 발견한 순간 곧바로 치워버렸어야 마땅했다. 새끼고 뭐고, 비둘기가 개체수를 늘리지 못하도록 그냥 밀어 떨어뜨렸어야 했다. 다른 주민들과 함께 해충박멸에 나섰어야 했다. 그것이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비둘기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고 대응일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뒤늦게라도 내 집과 이웃집들에 해를 끼친 비둘기 집을 없애버린 것은 잘한 일이었다. 비둘기를 잡아 죽인 것도 아니고 그저 집을 치워버린 것뿐이니 죄책감 같은 걸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파수병이 되었다. 다시는 비둘기가 집을 짓지 못하도록, 쳐놓은 그물을 단단히 여몄다. 틈틈이 창밖을 내다보고 괜히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시끄럽게 굴었다. 우리 집이 너무 조용해서, 사람 살지 않는 집 같아서, 비둘기들에게 더없이 안전한 곳이 되었을 거라는 주민대표의 진단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비둘기들은 계속해서 찾아왔다. 달리 집 지을 곳을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그 지독한 귀소본능으로 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갑자기 사라진 둥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습관처럼 날아왔다가 앉을 곳을 찾지 못해 그대로 다시 날아가곤 했다. 아예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올 때도 있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라도 다시 집을 지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단속을 강화했다. 그물만으로는 안심이 안돼 난간에 반짝이는 바람개비를 달았다. 비둘기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갖고 있다는 바퀴벌레약도 붙였다. 결국 비둘기들은 건너편 지붕 위로 건너갔다. 비둘기들의 시선이 항상 내 집 쪽을 향해 있어 불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성공했다. 비둘기들은 부리를 처박고 털을 고르기도 하고 둘이 자리를 바꿔 앉기도 하면서 평온한 풍경이 되어갔다. 그저 지붕 위의 다정한 두 마리 비둘기. 나와는 상관없는 풍경의 일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우리 집 쪽을 보게 되었다. 실외기에 둘러쳐진 초록색 그물이 볼썽사나웠다. 채 못 치운 똥줄기가 벽을 타고 아랫집으로 주욱 이어지고, 그 위로 은색 바람개비가 이것 좀 보란 듯 번쩍이며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 흉물스러운 외관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결별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내 마음에 슬그머니 둥지를 틀었다가 떠나버린 연인을 처리하던 시간. 둥지를 밀어내고 물을 뿌려 찌꺼기들을 치워도 여전히 남아 있는 흔적들과, 마음에 그물을 치고 그 그물에 스스로를 옭아매던 사나운 시간들. 저곳에 둥지를 틀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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