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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주한 미국대사 마크 리퍼트가 피습당했다. 결과적으로 나의 두 조국은 사건 관계에 있어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뉘었으며 이는 두 나라 간의 거시적 외교 관계에 흠집을 냈다. 이 사건은 피의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대한 어긋나고 뒤틀린 통찰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본다.

나는 이 사건이 지극히 극단적인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넓게 보아 대한민국의 이야기이고,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먼저, 피의자 김기종은 평소 반미·반일 민족주의 활동가로서 평소 독도 영유권 분쟁과 키 리졸브 한·미 연합훈련과 같은 대외적으로 논란이 많았던 이슈들을 자신의 신념 아래 해석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표출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는 평소 자신을 안중근 의사와 비견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는 폭력을 ‘애국심’으로 가장해 정당화하려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김기종을 통해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드러내주는 하나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주로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후 발생하는 트라우마를 일컫는 의학적 용어인데 대한민국은 아직까지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아픔이나 냉전시대에 대리전을 통해 형제에게 총을 겨누며 받았던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은 아직 아프고 사과받고 싶은 피해자인데 가해자들은 최근 셔먼 발언 혹은 위안부 사태를 통해 “다 지난 일이지 않느냐”라는 태도를 표명했고 일부 ‘행동하는’ 세력들,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김기종이 강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거다.

분노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 극단에서 비롯하지만, 그 근본의 동기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암암리에 공유해오고 있던 상실감이다.

또 이것은 비단 대한민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했던 샤를리 에브도 사건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 테러사건의 범인들은 100년 넘게 식민지배를 당하며 희생되었던 알제리계 프랑스인이다. 이들이 직접 식민지배를 겪진 못했지만 부모세대들이 겪은 고통들에 공감하며 프랑스의 비무슬림의 조롱 혹은 무관심에 분노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과 연관성을 띠고 있다.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를 공격한 혐의로 체포된 김기종씨(55)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6일 서울 종로경찰서를 빠져나와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고전적 의미에서의 식민지배라는 패러다임은 끝이 났다. 고전적 의미에서의 냉전시대 이념갈등도 끝이 났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갈등들에서 비롯된 절망과 증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이해관계로 대립을 겪고 있으며 남과 북은 아직도 서로에게 총구를 겨눠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 서로를 100% 용서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확실히 이전과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세대가 조금 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세계관을 공유하며 살아가지만 여전히 이전 세대가 남겨놓은 증오의 틀에 구속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까.


윌리암 리 | 재미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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