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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한국을 찾아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또다시 세월호 문제를 거론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단과 만난 자리에서다. 교황은 첫 질문으로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한다. 교황의 관심이 반가우면서도 부끄럽다. 지구 반대편의 교황은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는데 ‘지금 이 땅’에선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는가.

방한한 교황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네 차례 세월호 가족을 만났다. 서울 광화문 시복미사 전 차에서 내려 단식 중이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손을 잡은 장면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한국에 머물던 내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던 그는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유를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 중립을 위해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했다.”

교황이 떠난 뒤, 잠깐의 열광에서 벗어난 한국 사회는 다시 싸늘해졌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전가의 보도 격인 ‘외부세력 배후론’을 꺼내 유가족을 국민에게서 분리시키려는 전략을 폈다. 세월호특별법은 특별조사위원회의 수사·기소권과 유가족의 특별검사 추천권이 빠진 반쪽짜리로 통과됐다. 최근 특별조사위가 출범하긴 했으나 새누리당 측 위원들의 방해 책동으로 활동이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선체 인양 문제 역시 답보 상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립 서비스’만 되풀이하는 터다. 정부·민간 합동조사팀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고, 국민의 60%가 인양에 찬성하는데도 말이다. 그뿐만 아니다. 인천에 건립하려던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예산을 지원할 중앙정부 주무부서가 정해지지 않은 게 이유라고 한다.

최혜정 단원고 교사와 박지영 승무원의 유족들이 8일 미국 필라델피아 네이비야드에서 골드메달을 받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부터 최 교사 아버지 최재규씨, 박 승무원 이모부 유진규씨, 최 교사 어머니 송명순씨, 박 승무원 어머니 이시윤씨. _ 연합뉴스


지난해 4월16일 이후, 모두가 ‘세월호 이후’를 이야기했다.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잊으라고 압박하는 세력, 그 틈을 타 잊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목숨을 잃은 304명과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생존방식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 사건이다. 이 질문에서 자유로운 구성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호의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공동체 전체가 거짓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체 인양과 진상 규명을 서둘러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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