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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2018년 10월4일 유은혜 장관 취임과 더불어 유치원 방과후 과정에서 ‘놀이 중심 영어’를 허용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는 이전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금지에 관한 법 시행을 1년 유예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일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러한 중요한 영어 관련 정책들이 충분한 학술 및 현장 연구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제한하기로 하였다가 허용되는 등 체계성과 일관성이 결여된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 특히, 현재 초등학교 1·2학년은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있는 공교육정상화법에 따라 2018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영어교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련 법안 또한 국회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당장 이번 주부터 신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유치원에서 영어를 접한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은 학교에서 방과후에도 영어를 여전히 배울 수 없게 되어 있다. 결국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학원 뿐이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내놓은 교육행정의 결과가 학교 영어교육을 갈팡질팡하게 하고, 학부모들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사립유치원 개학연기 사태에 대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절차도 문제이지만, 교육적 관점에서도 고려해봐야 할 부분이 많다. 그동안 10세 이전에는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교육부의 유치원 방과후 ‘놀이 중심 영어’ 허용을 통해, 영어 시작 연령이 5세(만 3세)로 낮춰졌다. 교육부가 학부모들의 의견 수렴과 요구를 통해 허용하였다고는 하지만, 5세 아동의 언어적, 인지적, 심리 및 정의적 영역 발달에 대한 교육적 연구를 얼마만큼 기반으로 하여 이 정책을 내놓았는지도 의심스럽다.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허용과 관련하여 명확하게 이해해야 할 부분이 놀이식 교육이다. 유아교육에서 놀이교육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놀이 중심 영어’는 놀이교육이 중심이 되면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야 한다. 아동의 언어 및 전체적인 영역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아동의 연령에 따른 방법론적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는 교육부의 방향대로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가 허용된다면, 이를 어떤 철학을 가지고 개념화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유치원 ‘놀이 중심 영어’와 초등학교 3·4학년 영어과 교육과정 사이에 존재하는 초등학교 1·2학년의 방과후 영어 과정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교육적 큰 틀의 개념들이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이고, 없다면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전문가들이 해야 할 또 다른 시급한 일들이 있다. 우선, 유치원의 방과후 특성화 프로그램에 대한 조사와 각 유치원의 영어프로그램에 관련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5세부터 7세까지 연령별 수준에 맞는 놀이식 영어교육에 관한 세부 운영기준을 이론적·경험적 자료를 토대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놀이식 영어교육과 관련해서는 영어전담 회화강사와 같은 제도보다는 현 유치원 교사의 연수가 우선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더불어 초등학교 1·2학년의 방과후 영어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성격과 교육방법이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유은혜 장관의 말대로 교육에 있어 중요한 주체가 학부모와 학교일 수 있고, 이들과 활발한 소통을 통해 정책을 시행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의 대상인 학생들이다. 특히,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영역의 교육은 루소의 철학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아동들이 배움의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면 효율이 떨어지고, 흥미를 잃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교육에서 무언가 가르치는 것을 제한하거나 허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호기심을 갖고 배움을 쌓아가도록 환경과 내용,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선호 | 서울교대 교수 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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