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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새로운 여정을 축하하며, 지금부터 주어질 자유와 낭만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물어보세요. 그리고 다양한 지식을 접하는 희열을 느끼면서 시민으로 성장해 주세요.”

12년간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3월 첫 강의 때마다 했던 말이다. ‘어른들이 가라고 해서’ 대학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비싼 돈 들여 발을 내디딘 새내기들에게, 여기는 취업사관학교고 목표는 오직 기업의 노예로 선발되는 것이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학과 작별하는 마당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를 하기는 싫다. 빌어먹을 대학이 사람을 어떻게 괴롭히고 길들이는지를 ‘시작부터’ 아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행복은 자기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한다지만 대학은 그럴 수 있는 구조가 없다. 수강신청을 할 때부터 이상하지 않았던가. 듣기 싫은 ‘필수’ 과목은 왜 그리도 많은가. 건학이념 같은 강의는 차치하더라도 영어, 컴퓨터, 읽기와 쓰기 등의 강의를 신청하고 나면 고교 때와 진배없는 시간표가 된다. 게다가 기업의 입맛에 맞추려는 의도가 다분한 CEO 리더십, 글로벌 비즈니스 예절 등의 요란스러운 이름의 강의를 들어야 하니 다양한 강의를 찾아들을 시간 자체가 봉쇄된다. 초과 학점을 신청해서라도 대학에 온 보람을 느끼고 싶어 한들, 이를 만족시킬 만한 강의는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학은 취업률 낮은 학과를 압박했고 자연스레 실용과목 위주로 커리큘럼을 개편했다. 물론, 회사에서 보스에게 사랑받는 법을 외우고 나비넥타이 매는 법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행복을 느낀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

많은 이들이 대학의 민낯에 실망하겠지만, 학기가 높아질수록 자신들이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면접에서 혹시나 꼬투리 잡힐까 봐, ‘혁명’ ‘마르크스’ ‘노동’ 등의 이름이 들어간 강의를 피해 가는 건 약과다. 실용과목을 너무 많이 접해서일까? 이들은 가급적 적은 시간을 들여 학점을 보장받는 강의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강의 중에 다른 과제를 해도 괜찮은, 그러니까 ‘제대로 듣지 않을’ 과목을 고르는 역설이 이해되는가. 학생들은 파워포인트만 줄줄 읽고 빈칸 채우기 수준의 기계적인 문제를 내는 교수를 보며 무슨 대학 강의가 이따위냐면서 욕하지만, 그렇다고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작성하는 서술형 시험을 선호하지 않는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세상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누구라도 이렇게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

캠퍼스 풍경은 기가 찰 것이다. 게시판은 토익, 중국어 학원의 전단과 라식·라섹 수술을 특별 이벤트로 대폭 할인한다는 병원 광고로 넘쳐날 것이다. 그 옆에는 ‘예쁜 눈 선발대회’를 열어 우승자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렌즈회사의 소식도 볼 수 있다. 가끔 시대를 비판하는 진지한 내용의 대자보가 붙기는 하는데, 이를 읽는 사람들은 없다. 곳곳에 나부끼는 현수막에는 절반이 기업설명회 소식이고, 나머지 절반에는 그런 기업에 합격한 사람들 명단이 나열되어 있다. 이런 공간에서 학력차별을 밥 먹듯 하는 교수를 만나고,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어색한 괴상한 영어강의를 듣는 건 덤이다. 여기서 나름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꼭 그렇게 하길 바란다.

이미 실천하는 이들도 있다. 취업만이 정답인 곳에서 많은 이들이 공무원이 되는 것 외에는 정답이 없는 분위기를 인정한다. 스펙을 마련할 돈과 시간이 없다면, 지방대라는 타이틀이 두렵다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합격한 일부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례가 되어 합격비법을 전수하기 바쁠 것이다. 그 덕에 공무원이 되길 희망하는 대학생들은 많아진다. 목표가 선명해진 이들은 답 너머의 답을 찾아가는 머리 아픈 강의는 피하면서 슬기로운 대학생활을 할 것이다.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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