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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으로 보면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힘이 맞부딪치는 지점이다. 그래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힘의 관계가 변화할 때마다 역사적 격변을 겪었다. 그간의 역사적 경험은 이 두 세력의 대립이 전쟁과 분단으로 귀결되는 비극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역시 한반도를 둘러싸고 다시 한 번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의 힘의 관계가 변화하는 시기다. 우리는 그간의 역사적 경험을 되살려 두 세력을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상생의 관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왔다. 그렇게 피스메이커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한국이 세계와 함께 평화 번영으로 나가는 길이고 한국이 세계의 중심에 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대를 모았던 하노이 북·미회담이 언론의 표현대로 하자면 결렬되어 우리를 무척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긴 협상과정의 일환이고, 오히려 피스메이커로서 우리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는 국면으로의 전환이라고 생각하면 비관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사실 남북 평화 국면의 출발은 미국이 가져온 것이 아니라 혹한의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1000만이 넘는 촛불이 가져온 것이다. 1000만의 촛불이 새로운 정부를 가능하게 했고 새로운 정부로 하여금 평화의 염원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그 움직임이 북한과 미국을 촉발하여 현재의 평화협상 국면을 조성한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관성으로 미국이 어떠하니 안될 것이라는 식의 수동적 관점으로 상황을 판단할 이유가 없다. 그것보다는 김구 선생 식으로 “남북 8000만이 휴전선을 베고 죽을 각오로 나선다면 어찌 남북 평화체제가 실현되지 않으랴”라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남북 평화체제의 실현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과연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남북 평화체제는 협상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일단 고비를 넘기면 급물살을 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남북 평화체제는 단순히 남북관계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이 해양국가이면서 동시에 동남아를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 국가로 자리 잡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상생의 관계로 이음으로써 세계 평화체제의 중심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사적 갈림길에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분단된 남쪽에 갇혀 해양세력 쪽으로 일방화되어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좁고 편향된 의식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는 박근혜 정부 때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개성공단 폐쇄만 보아도 잘 알 수 있고, 그런 좁고 편향된 의식이 얼마나 위험한가는 북·미 간의 중대한 협상 국면에서 미국을 방문한 야권 인사가 했다는 “우리는 전쟁을 원한다”는 발언이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의 협애함과 편향이 단순히 일부 정치세력만의 문제일까?   

글로벌화 시대에 교육 수요자의 요구는 국내에 머물지 않고 국제화되고 있다. 한국의 외국 유학자가 15만명 정도이고 아시아권의 한국 유학자가 10만명 정도이다. 그러나 현재는 아시아권 유학자들에 대한 질 관리가 되고 있지 않고, 한국의 외국 유학자 15만명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며, 이러한 국제적 지식의 흐름도 속에서 한국의 교육학문 생태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하는 물음조차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는 남북 평화체제의 진전 속에서 유라시아권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삶의 기반으로 다가오는 시점임을 고려하면 매우 우려할 만하다. 한 나라의 장기적 성패의 관건 중 하나는 세계적 지식의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가이다.

한국은 산업화 시대에는 서구에서 생산된 지식을 일방적으로 수입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동남아를 포함한 유라시아권으로 경험과 지식을 수출하고, 한국을 포함한 유라시아권을 기반으로 생산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해 서구 선진국들과 생산된 지식을 주고받는 관계로 세계 지식 흐름도 속에서 위상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길고 넓은 안목의 조망이 없으면 한국 교육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장기적으로 국가적 실패를 가져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세계적 수준에서 지식 자체의 생산과 흐름, 유라시아권을 기반으로 한 지식 생산과 유통의 가능성, 그 속에서의 한국 교육학문 생태계의 역할 등을 메타지식학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장기적 고등교육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다룬 영화에서 한국 고위 경제 관료가 IMF의 요구에 대해 보인 반응이 한동안 시중의 화제가 된 바 있다. 그 고위 경제 관료는 IMF의 무리한 요구에 순응적인 수준을 넘어 그러한 무리한 요구를 다행스럽게 여겼다. 지적 종속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내가 더 우려하는 것은 그렇게 심각한 일을 겪었으면서도 그 고위 경제 관료가 그런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세계적 수준에서의 경제학 지식의 흐름과 그 속에서의 한국의 위치, 한국 경제정책에 대한 영향 등에 대한 메타지식학적 성찰이 담긴 논문 한 편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 세계적 수준에서 지식 자체의 생산과 흐름, 유라시아권을 기반으로 한 지식 생산과 유통의 가능성, 그 속에서의 한국 교육학문 생태계의 역할 등을 연구 검토하는 메타지식학으로서 유라시아학이라도 창설해야 하는 것일까? 주어지는 과제들에 비추어보면 한국 고등교육의 위기의 심도가 말할 수 없이 더 깊어 보인다.

<김진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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