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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온몸으로 뛰고 있는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지난달 30일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도 있는 핵 재처리 연구 개발을 2020년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용후핵연료를 건식 재처리하여 이를 연료로 쓰는 고속로라는 원자로를 연구 개발하겠다는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은 1997년부터 20년간 6700억원의 혈세를 낭비했지만 경제성도 안전성도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를 실제 하려면 한·미 원자력협정상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한데, 원자력계가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여 연료로 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핵 확산 가능성이 있는 재처리로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1층에서 완전한 비핵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이 담긴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맞잡은 손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판문점 _ 공동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공약하였고, 지난해 국회도 전문가와 국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조건으로 예산을 집행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과기정통부가 구성한 ‘재검토위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공개로 일관하였고, 공개토론회 한번 열리지 않았다. 반대의 목소리가 철저히 배제된 채 사업 추진 측의 해명만 거듭된 위원회가 어떻게 ‘재검토’를 할 수 있는가? 재검토위원회는 반대 측 패널에 대해서는 단 한 번만 질의·회신을 한 반면, 찬성 측 패널에 대해서는 4차례의 질의·회신을 했다. 찬성 측 패널에게 3차례 추가 질의를 할 때 반대 측 패널에게는 그런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전문가 의견 청취와 청문회도 찬성 측 패널에 대해서만 이루어졌고 그것도 비공개로 진행되어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른다. 당초 과기정통부는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검증에 활용한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냈으나 자료 공개는커녕 재검토위원회 진행 과정조차 알려진 바 없다. 과기정통부는 재검토위원회 보고서가 나온 다음에도 공개하지 않았다가 이를 강력하게 문제 삼자 겨우 공개하였다.

과기정통부가 내건 ‘객관적인 검토’가 되자면 찬반 양측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토론이 공개되었어야 했다. 그래야 재검토위원회가 내리는 결론의 타당성에 대해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사업 강행을 의도한 이름뿐인 재검토였기에 반대 측 패널은 재검토위원회 해체를 요구했지만 과기정통부는 반대 측 패널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이래서야 반대논리를 가진 집단이 어떻게 정부 공론화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하반기에 예상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도 신뢰할 수가 없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역시 시민들이 40년 이상 원전 홍보에만 길들여져 있고, 정보 비대칭으로 철저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를 미국이 허용할 수 없어 성공할 수 없는 사업인 데다 한반도 비핵화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또한 파이로프로세싱·고속로사업을 위해서는 원전보다 엄청나게 많은 방사능을 배출하는 재처리 시설과 최소한 10기 이상의 훨씬 위험한 고속로 원전을 지어야 하는데 어느 지역이 이런 핵 시설을 받아들일 것인가? 이처럼 한반도 비핵화와 신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겠다는 에너지 전환정책에 역행하는 연구 개발에 왜 혈세를 쏟아붓겠다는 것인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 모임 해바라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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