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8월31일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알려진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흡연에 노출되면 폐암 발병률이 10~20배 높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폐질환 발병이 47배나 높아진다는 게 정부역학조사의 요지였다. 한 예방의학 전공교수는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면 폐가 굳어지고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명백한 관련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둘러싸고 지난 3년간 진행된 일들을 돌이켜보면, 현재 진행되는 세월호 참사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첫째, 이 두 사건은 아주 친숙한 우리 주변의 환경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수백명이나 희생되었다는 데서 비슷하다. 지금까지 정부조사에 참여한 가습기살균제 사망자는 130명이고 세월호 사망자는 실종자 10명을 포함하여 모두 304명이다. 가습기살균제 사용자가 겨울철마다 800만명이 넘었다니 지난 18년 동안 얼마나 많은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했었는지 어림짐작도 못하겠다.

둘째, 단순 사고인 것처럼 보였는데 발생원인이 매우 구조적인 점이 유사하다. 세월호 참사는 누구 말마따나 ‘단순한 교통사고’인 줄 알았는데 관피아, 해피아로 불리는 부패의 고리 속에서 회사는 선박의 구조를 바꾸고 과적을 일삼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일개 공산품의 제품상 하자’인 줄 알았는데 살균성분이 호흡기로 들어가는 제품을 만들면서 제조사들은 흡입독성 안전테스트를 하지 않았고 공산품관리와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맡고 있는 산업부와 환경부는 이를 방치했다.

셋째, 사건의 발생 과정에서 어떻게 대처했느냐 하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세월호는 300명이 넘는 선내 승객들을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1994년 시판 이후 오랫동안 피해문제를 알지 못하다가 2006년경에 학계의 보고로 질병관리본부 관계자가 회의까지 열었지만 원인규명을 위한 역학조사를 하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넷째, 사고를 일으킨 기업은 나 몰라라 하고 안전관리에 실패한 정부는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모양새가 같다.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회사의 책임자는 도피를 일삼다 원인불명으로 사망해 버렸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회사들은 정부조사가 잘못되었다며 적반하장으로 소송에 몰두해 있다. 우왕좌왕하다 세월호 인명구조에 실패해 놓고도 ‘왜 나에게 책임을 묻느냐’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볼멘 표정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조사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라던 보건당국과 ‘이 문제는 환경보건문제가 아니다’라고 강변하던 환경당국의 관료들에게서도 쉽게 읽힌다.

그 밖에도 두 사건의 비슷한 점이 더 있다. 두 사건 모두 특별법을 만들어 해결하기로 했지만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거리로 나선 점도 같다. 시민사회가 이들 피해자의 손을 잡아주고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좋은 의미에서 비슷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31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3년, 살인 기업 규탄 및 피해자 추모 대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얼마 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모임의 총무가 광화문을 찾아 세월호 대책위의 대변인을 만나 서로의 아픔을 위로했다고 한다. 자식을 잃은 두 아빠가 손을 잡고 헛웃음을 지어 보였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세월호와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안전망이 붕괴한 대표적인 사례다.

희생자를 잊지 않고 이들 참사가 주는 사회적, 정치적 교훈을 뼈저리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입에 담기도 싫지만 유사한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

최예용 |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