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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교육부가 주최한 토론회를 비롯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세간의 관심을 더 끈 것은 3·1운동과 관련해 유관순을 다루지 않은 교과서들이 많다는 지적이었다. 우연도, 실수도 아니라는 지적과 더불어 종북좌파 성향의 필자들이 집필한 교과서가 주로 그렇다는 논지였다. 필자가 집필자로 참여한 천재교육의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도 그 중 하나로 거론됐다.

그래서 교과서를 보며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중학교 책에서는 ‘4인의 여성독립운동가’라는 특별 코너를 한 면에 걸쳐 다루고 있는데, 유관순도 포함돼 있다. 적지 않은 분량을 할당한 것이다. 고등학교 책에서는 독립기념관에 있는 ‘3·1정신상’이란 조각물의 사진을 소단원이 시작되는 곳에 제시하고 있다. 3·1운동이 남녀노소, 신분과 지위를 불문하고 200만명 이상의 조선인이 참여한 대중적 항일운동이었음을 형상화한 조형물이기 때문이다.

역사인물과 일화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초등 교육과정을 고려할 때, 5학년 2학기용 국정 교과서에서 유관순 열사를 특화해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용 교과서도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고교생에게는 3·1운동의 전체상과 특징을 보여주는 내용과 구성이 더 적당하다. 그래서 천재교육의 교과서는 해외에서도 3·1운동이 전개됐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1919년 4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의 시가행진 사진을 수록하고 있다.

그동안 언론은 교과서를 비판하면서 사실이 있다, 없다만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오류를 반복해 왔다. 잘못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초·중·고 교육과정의 계열성과 교과서들의 편집구성을 고려하지 않은 데 큰 원인이 있다. 두 가지 사항은 교과서 분석의 최소 전제임에도 불구하고 교육부 장관조차 이를 망각한 것 같다.

26일 경기도 과천 교육원로 국사편찬위원회 앞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에서 역사정의실천연대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유관순을 언급하지 않은 점이 문제라는 특정 언론의 주장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국정제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여론을 조성할 수 있는 호재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교육부는 자신이 주최한 토론회에서조차 확인된 다수의 검정제 여론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지금 교육부가 한국사 교육과 관련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2016년 11월 수능에서 한국사는 필수과목이다. 올해 고교에 입학한 학생부터 해당된다. 교육부는 쉽게 출제하겠다고 공약했지만, 교사들은 수능에 맞추어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중학교 수업과의 차별성이 있을지 우려한다.

한국사 수업의 부실을 걱정한다. 교육과정의 총론-각론과 해설, 그리고 한국사에만 있는 집필기준에 의해 제작된 현행 교과서는 쉬운 수능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이 체계적으로 계열화되어 있지 않은 현실은 역사과 교육과정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여기저기서 확인된다. 가령 고등학교의 동아시아사와 한국사 교과서에서 말하는 동아시아의 공간범주가 다른데 지금도 정정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한국사 교과서 사이에서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또한 제3차 교육과정 이래 40여년 동안 북한사는 ‘통일정책사’와 연관 지어 설명되고 있어 교사로서는 한국현대사를 다시 설명해야 한다. 사실 이 주제는 다른 교과목에서도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다. 오히려 한국사 교육과정은 남북분단이 현대사 전반에 어떻게 내재화해 왔는가를 교육할 수 있도록 개발해야 한다.

정부는 작년 교과서 파동의 해법으로 국정제와 편수국 부활을 제시했다. 그러나 파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부가 교육과정 개발을 게을리했고, 교과서 검정제를 잘못 운영한 데 있다. 정부의 해법은 한국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상식의 범위 안에서 다양한 사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접근이다.


신주백 | 연세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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