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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에너지 및 전력 산업은 지난 수십년간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으며, 국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기반산업으로서 그 역할을 안정적으로 해왔다. 최근 몇 년간 전력난으로 온 국민이 불편을 느끼기도 했지만 전기 에너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기회이기도 했다. 공장과 빌딩, 일반 국민의 전력수요를 맞추기 위해 값싼 원자력 발전소와 석탄화력 발전소를 중심으로 기저 발전기를 대규모로 건설하였으며 대형 발전단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소비자에게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대형 송전망도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민의 원전수용성 하락, 송전망 건설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 부지 확보난 등에 따른 설비건설의 지연 및 취소 등에 기인한다. 한편 전력수요는 연평균 6%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어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전력수급 불안정 문제가 또다시 대두될 수 있다. 최근 한 민간발전사업자의 신규 발전소 인수 포기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대규모 설비 중심의 에너지 체제는 예상하지 못했던 추가 비용 발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우리는 개도국 중 최고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이행해야 하는 등 국내 에너지산업은 대내외적으로 커다란 도전과 위기에 직면하였다.

서적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 다른 에너지> (출처 : 경향DB)


위기가 기회이듯 이러한 문제는 오히려 창조적인 발상을 통해 에너지분야에 새로운 산업창출의 모멘텀으로 전환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과제가 필요하다. 첫째, 그간 지속되어 온 대규모 설비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ICT 및 혁신기술과 에너지시장의 효율적인 융합을 통한 수요관리 위주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가장 값싸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은 원자력이나 석탄발전, 신재생발전이 아니라 에너지소비를 효율화하고 기술과 시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수요를 적절히 조절하는 수요관리 자원이라는 인식을 실제 시장에서 구현해야 할 때이다. 우선 효율적인 에너지시장 즉, 가격과 요금이 자원의 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전력시장 및 수요관리시장이 설계되어야 한다. 혁신기술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민간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우며, 에너지 분야의 신산업 출현은 더욱 더딜 것이다.

둘째,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비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분산전원을 확대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에너지기술과 산업의 출현이 기대된다. 분산전원의 확대를 위해 에너지가격의 지역별 체계, 송전망 요금의 지역별 차등, 권역별 독립적인 수급체제 등 정부 차원의 정책 도입을 검토하여 분산전원 시장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분산전원 활성화를 위해서도 관련기술 혁신과 이를 지원하는 효율적인 시장체제 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수평적이고 분산화된 새로운 에너지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전기자동차와 에너지저장장치, 에너지관리시스템 등을 기존의 전통적인 에너지 시스템에 연결하면 지역별, 시간별로 자유롭게 에너지를 생산 또는 소비하는 프로슈머(Prosumer)의 등장을 촉진하게 된다. 이를 통해 다양하고 혁신적인 새로운 에너지 산업과 일자리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혁신기술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시장과 가격체제의 미비는 매우 큰 장애요인으로 인식되고 있으므로 전통적인 에너지가격체제나 요금설계에 혁신기술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 국내 에너지산업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새로운 에너지체제 및 신산업을 창출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지불할 용의가 있는 수준을 결정하여 적절한 시장신호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혁신기술과 가격체제의 융합을 도모해야 한다.


김진호 |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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