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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진과 쓰나미를 계기로 일어났다. 하지만 스리마일이나 체르노빌 사고처럼 그 이외의 요인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원자로 내에는 막대한 양의 방사성물질이 누적돼 있기 때문에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는 대규모 방사능 피해가 장기간에 걸쳐 초래된다. 원전은 본질적으로 위험한 존재여서 이를 가동하는 데에는 철저한 안전관리가 필요하다.

원자력사업자와 정부가 절대 안전하다고 선전하던 원전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났으니 일본에서는 이제 원전 추진을 외쳐온 사람들조차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됐다. 지금은 일본의 모든 원전이 멈춰 있고 안전심사를 다시 하고 있다. 어떤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일본인 3명 중 2명은 탈원전을 지지하며, 원전을 재가동하려는 움직임을 엄격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경험한 일본인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의 고리원전을 둘러싼 안전성 시비는 한가롭게까지 느껴진다.

원전에서 핵반응을 일으켜 고온·고압 상태인 노심을 감싸고 있는 압력용기 본체가 파열된다는 것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가장 무서운 사고이다. 고리원전 1호기에서는 압력용기의 중성자 조사 취화 수준을 나타내는 취성천이온도의 관측 수치가 107도라는 위험수역에 달한 바 있다. 게다가 이는 15년 전인 1999년의 데이터이다.

얼마 전 있었던 고리원전 침수 과정 (출처 : 경향DB)


필자는 2012년 9월 한국 부산의 법원에서 고리1호기의 중성자 조사 취화에 대해 증언을 했다. 취성천이온도의 측정 데이터가 15년 전 것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사업자가 실시한 취화 예측은 커다란 불확실성을 안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업자가 취성천이온도를 예측하는 데 있어 눈가림식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통상적으로 샤르피 시험에 근거한 예측식을 사용해 취성천이온도를 구하게 되는데, 그 방법으로는 고리1호기가 운전을 개시한 지 40년이 되는 2017년에는 취성천이온도의 평가치가 151도가 되어 가압충격을 회피하기 위한 규정치인 149도를 넘게 된다. 이 때문에 본래는 파괴인성을 구할 때 쓰는 방법인 마스터커브(Master Curve)법을 원용해 취성천이온도를 계산함으로써 127도라는 결과를 끌어내 안전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필자는 이러한 의견을 부산의 법정에서도 진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법원은 정부와 사업자의 주장만을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고리1호기의 가동정지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이처럼 사법부가 국책사업인 원전 추진을 거스르는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은 일본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상황이 크게 변했다. 2014년 5월 후쿠이 지방재판소는 오이(大飯)원전 가동정지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주민의 ‘생존권’이 첫째로 중시돼야 하며 발전을 통해 얻어지는 경제적 이익은 하위 권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만에 하나라도 구체적인 위험성’이 존재한다면 운전을 정지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시민의 눈높이에 선 획기적 판결이었다.

1970~1980년대에 만들어진 낡은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벨기에의 도엘 원전 3호기(1982년 10월 운전 개시)와 티앙주 원전 2호기(1983년 6월 운전 개시)의 압력용기 노심 중앙부 안쪽에서 제조 당시의 잔류수소에 기인하는 파편과 안쪽 표면으로 이어지는 균열이 발견됐다. 벨기에 규제당국은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이들 두 원전의 운전을 정지시켰다.

원전의 안전성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판단을 전적으로 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편향된 입장인 전문가의 판정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커다란 희생을 치르고서야 사람들이 이 점을 깨달았다. 시민과 지역주민은 원전 추진 입장과 비판 입장 쌍방의 의견을 듣고 어느 주장이 타당한지 잘 검토해 원전의 안전성과 운전의 시비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는 이를 돕는 역할에 철저해야 한다. 지역 자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노 히로미쓰 | 도쿄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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