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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가 기어코 들어오고 말았다. 부지도 조성되기 전에 장비부터 반입하는 것은 한·미 정국의 불확실성을 의식한 양국 군부에 의한 알박기에 다름 아니다. ‘말아먹었다’는 표현조차 모자랄 만큼 지난 9년간 실패를 거듭해온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패잔병들이 막바지까지 패착을 거듭하고, 미국은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필자는 이전 칼럼들을 통해 한국외교의 잘못을 질타하면서 차라리 아무것도 시도하지 말 것을 강하게 주문했었다. 하지만 자격미달의 정부는 상황을 도저히 복구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양상이다. 한마디로 ‘머저리’ 외교가 ‘미저리(misery)’, 즉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되고, 최순실은 감옥에 있는데도 원격 조종이라도 받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어서 국정을 잠시 맡겼지만, 황교안 권한대행 정부는 국정농단의 부역자이며, 일종의 금치산자임에도 국가대사에 대한 농단을 멈추지 않는다. 국방부와 외교부 역시 황 대행의 비호 아래 미 군부 강경파들과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행동대원 같다.

8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지난 6일 사드 발사대 2기와 일부 장비를 싣고 온 것으로 알려진 C-17 수송기(왼쪽)가 활주로에 서 있다. 이상훈 기자

현 정부의 안보외교 무능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천하가 다 아는데 자기들만 모른다. 사드를 이념 분열의 도구로 삼아 지지하면 애국이고, 반대하면 종북으로 모는 1차원적 편가르기는 변함이 없다. 애초부터 합리적으로 추진하고 소통할 생각은 없었음이 분명하다. 사드가 꼭 필요한 무기라면 국민을 설득해 지지를 받아, 중국을 향해 당당하게 안보주권의 행사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도 우리의 주권적 결정은 없었고, 도둑처럼 몰래 들여왔다. 필요한 배치라면 정상적으로 당당하게 들여와야 맞는 것이다.

중국의 제재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다가 본격화되자 이제 와서 대국답지 못함을 질타하고, 국민들의 혐중의식을 자극하며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중국의 행태가 대국답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시발점은 한국 외교다.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대의견을 피력할 때마다 정부는 배치하지 않을 것처럼 중국을 안심시켰다. 2015년 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배치 결정을 선포하기 불과 10일 전에도 황 총리는 시진핑에게 결정된 것이 없다고 했다. 한민구 국방장관 역시 배치 발표 3일 전에 국회에서 결정된 바가 없다고 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발표 당일에 백화점에 바지수선을 하러 갔다. 양치기 소년을 넘어 상습적 거짓말을 일삼는 집단 ‘리플리 증후군’ 수준이다.

단언컨대 사드 배치가 끝이 아니다. 다음은 미사일방어(MD)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의 구축이다. 미국이 내부적으로 사드가 MD의 일부라고 하는데도 우리 정부만 MD와는 무관하다는 거짓말을 멈추지 않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사드는 MD의 일부라는 사실이 재확인된다. 정부의 거짓말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중국의 전승절에 망루 높이 올라갔다가 추락하고 있다. 올라간 이는 대통령인데, 추락은 국민들 몫이다. 이후 한·미·일 군사협력을 위해 미국의 요구대로 일본과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에 응했고,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까지 수용했다.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미 의회에서 MD구축의 1단계는 패트리엇 미사일 설치, 2단계는 한·미·일 간 정보체계를 묶는 것이며, 3단계가 사드 배치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사드와 한·일정보보호협정이 미사일 방어와 무관하다는 한민구 국방장관의 말은 또 거짓말이다. 미·중은 한국을 인질로 갈등격화 조짐을 보이고, 일본은 재무장을 가속화하고, 러시아는 호시탐탐 개입을 도모하며, 북한은 도발을 멈추지 않는 극히 어려운 외교 환경에서 최선의 자세와 최상의 실력으로도 모자란데 구태의연한 냉전적 사고의 머저리 외교로 국가를 누란의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 정부에도 강한 유감을 전한다. 동맹을 들먹이지 말라! 이게 동맹이고 친구인가? 동맹국이 권력공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자기 뜻만 관철하는 것이야말로 대국답지 않다. 중국에 직접 맞서지 않고 한국을 방패 삼아 동북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모습은 미국 패권의 약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의 답은 필자가 알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무슨 우정 타령인가? 국익을 챙기려는 처절한 경쟁의 장일 뿐이다. 그런데 미국은 자신들이 유리할 때만 이 말을 하도 잘 써먹길래 냉소적으로 던져봤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제정치에서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믿지 말아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 일깨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결국 자강의 힘으로 우리의 운명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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