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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한글, 바르게 쓸수록 내가 존중받습니다.” 이것은 텔레비전에서 내보내고 있는 공익광고에서 하는 말이다. 한글 간판에 야릇한 외래어가 득실대는 장면에 이어서, 세종대왕 동상을 배경으로 어떤 젊은이가 몸을 이상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외친다.

말을 바로 써서 정신을 차리자고 특히 젊은이들을 깨우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직무 수행을 거꾸로 한다. “한글, 바르게 쓸수록 내가 존중받습니다”는 다섯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무려 세 단어 ‘한글’ ‘쓸수록’ ‘내가’에 아래에서 살피는 바와 같은 착오가 있다. 국어 오용의 표본을 보이는 자리에 배석하도록 해서 세종대왕을 모독하기까지 한다. 공익광고를 한다면서 공익을 해친다.

“한글, 바르게 쓸수록 내가 존중받습니다”에서 ‘한글’은 ‘우리말’이나 ‘국어’여야 한다. 화면에서 보여주는 간판에 한글을 바르게 쓰지 않은 것은 없다. 모두 획수가 틀리지 않고 글씨도 각기 그 나름대로 예쁘다. 잘못은 글이 아닌 말에 있다. 글과 말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외래어를 함부로 써서 말을 더럽히는 것을 한글을 바르게 쓰지 않는다고 나무란다. 무식의 소치인 어불성설이어서 바로잡아야 한다.

“한글, 바르게 쓸수록 내가 존중받습니다”에서 ‘쓸수록’은 호응하는 말이 없어 잘못 쓰였다. ‘-ㄹ수록’은 ‘앞 절 일의 어떤 정도가 그렇게 더하여 가는 것이, 뒤 절 일의 어떤 정도가 더하거나 덜하게 되는 조건이 됨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인 것을 알고 써야 한다. 뒤 절에 ‘더’ 또는 ‘더욱’이라는 말을 넣어야 어법에 맞는다. ‘더’ 또는 ‘더욱’을 넣지 않고, ‘쓸수록’을 ‘쓰면’으로 고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글, 바르게 쓸수록 내가 존중받습니다”에서 ‘내가’에도 문제가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이상한 말이다. 내가 하는 행위의 결과가 내게 미치는 효과는 다른 사람과 무관하다. “내가 존중받습니다”를 “나는 존중받습니다”로 고쳐야 한다. 내가 하는 행위의 결과로 “나는 멸시받지 않고 존중받습니다”라는 것이 맞는 말이다. ‘내가’라고 하든 ‘나는’이라고 하든 ‘나’가 필요한가도 재고해야 한다. 생략할 수 있는 주어는 생략해야 우리말답다. 존중받을 사람이 ‘나’이어야 할 이유가 없고,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므로 ‘나’는 없어야 한다.

“한글, 바르게 쓸수록 내가 존중받습니다”를 고쳐 “우리말을 바르게 쓰면 존중받습니다”라고 하면 좋겠다. ‘국어’는 엄숙한 말이어서 다정스러운 ‘우리말’을 택한다. ‘존중받습니다’라고 하는 피동형도 조금 거슬린다. 피동형 남용을 경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바르게 써야 훌륭하다고 합니다”라고 하면 더 나을 수 있다.

“한글, 바르게 쓸수록 내가 존중받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공익광고협의회의 광고 문구인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공익광고협의회가 임무를 거꾸로 수행해 공익을 해치는 데 앞장서는 잘못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나라를 해치는 범인이 높은 자리에 앉아 나랏돈을 써가면서 국민을 훈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 범인을 경찰이 잡아야 하는 것과 같아 긴 말을 할 것 없다. 이 글은 범인을 고발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의 힘으로 범인을 잡으라고 하고 경찰은 놀고먹는 나라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가? 이 나라 대한민국은 불행히도 아직 그런 나라이다.

국립국어원이 국어 오용의 범인을 잡는 경찰이어야 하는데, 임무를 망각하고 있다. 앉아서 사무를 보는 직원만 많고 범인을 잡으러 나가는 인력은 없어, 원망하고 나무라도 요지부동이다. 국립국어원은 국어사전을 잘 만들고, 국어 오용의 범인을 공공기관 안에 도사리고 있는 녀석들부터 잡아야 한다.

국립국어원이 스스로 알아차려 개과천선을 할 가망은 없다. 장관은 사태를 파악하지도 못하고 어물거리다가 물러나는 것이 예사이다. 하는 수 없어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외쳐야 무슨 일이든지 될까 말까 하는 저급한 수준의 나라가 이제는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응급사태는 그대로 둘 수 없다고 고발한다.

조동일 | 국문학자·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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