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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부터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100대 국정과제’를 확정해갈 예정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전향적으로 평가하기에 기대가 크다. 다만 계속 마음에 걸리는 주제가 국민연금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민연금 정책이 현세대 편향을 지닌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다른 복지제도와 달리 ‘시차’를 지닌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늘리면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면서 동시에 세금이나 건강보험료로 재정을 충당한다. 새로 도입될 아동수당도, 기초연금 30만원도 그렇다. 반면 국민연금은 내고 받는 시점이 다르다. 지금 국민연금 대체율을 올리는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지출은 수십년 후에 이루어진다. 이렇게 시차를 지닌 제도이기에 국민연금에선 현세대의 재정 책임 인식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집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명시했고, 후보 TV토론에서도 대체율 40%를 50%로 올리겠다고 주장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장도 오래전부터 이를 강하게 주창해 왔던 연금학자이다. 지난주엔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300여개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대체율 50%를 요구하며 정부 기조에 힘을 보탰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핵심 인사, 많은 시민단체까지 대체율 인상에 한목소리를 내는 모양새이다.

대체율 인상의 근거는 낮은 국민연금액이다. 불안한 노후를 생각하면 매력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연금은 급여와 보험료의 짝으로 존재한다. 아무리 급여를 올리고 싶어도 적합한 재정방안을 갖추지 못하면 부실 건축물로 전락한다. 현재 우리가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지만, 40% 대체율에 부응하는 수지균형 필요보험료율은 대략 14~16%이다. 현세대의 여러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부족한 보험료만큼이 미래로 넘어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대체율을 더 올리면 이에 합당한 보험료율 논의가 가능할까? 결국 문재인 정부가 대체율 인상을 국정과제로 꺼내고도 임기 내내 실행하지 못하거나 공약 후퇴라는 비판 때문에 도로 주워 담지도 못하는 늪에 빠질까 걱정된다.

그 조짐은 지난 대선 토론에서 발견되었다. 대체율을 올리면 보험료율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유승민 후보의 끈질긴 질문에 문재인 후보는 사실상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 번 그랬다면 생중계 토론에서 답변이 미진했다 여기겠지만, 이어진 토론회의 거듭된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했다면 후보보다는 캠프의 연금 공약 자체가 타당했는지 물어야 한다. 간혹 출산율을 올리는 게 대안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가입자가 내고 받을 몫을 사전에 확정하는 국민연금에서는 보험료와 급여의 수지 균형이 문제의 본질이다. 기금 수익을 강조하는 논리도 있지만, 국민연금기금이 무슨 신공을 가진 투자자도 아니고 그만큼 위험도 따르기에 공적연금에는 적합지 않은 제안이다.

사각지대 대책의 하나인 크레디트 확대 역시 균형 잡힌 인식이 요청된다. 지금 출산크레디트, 군복무크레디트 등을 늘리더라도 실제 지급은 은퇴할 때 이루어지므로 재정은 미래 세대가 감당한다. 국민연금기금의 공공투자도 결국은 국채 발행이다. 크레디트 확대가 필요하고, 공공투자 사업의 효과를 지지하지만, 재정 책임을 후일로 미루는 우리의 안이함도 되돌아봐야 한다.

공적인 노후소득보장을 단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연금의 대체율 인상론에 얽매여 연금개혁 논의가 공전만 되풀이할까 우려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크레디트를 늘리고, 국민연금용 국채를 발행하는 만큼 우리 세대의 각성을 촉구하려는 취지이다.

국민연금의 현세대 편향을 직시하자. ‘국민연금은 세대 간 연대제도’라는 당위적 포장으로 안주할 일이 아니다. 현행 대체율도 감당하지 못하는 보험료율 상황에서 대체율 인상은 설득력이 약하다. 현재 노인의 빈곤 대응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도 한계이다. 연금의 시야를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포함한 다원체계로 넓혀가야 출구가 생길 수 있다. 현재 노인빈곤에도 대처하고 당해 세대의 재정 책임을 동반하는 기초연금을 더 올려 최저보장선을 확보하자. 법적 의무인 퇴직연금을 제2국민연금으로 전환하면 여기서도 공적연금 대체율이 20% 정도 상향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온 힘을 쏟아야 할 주제는 국민연금 대체율 인상이 아니라 기초연금과 공공투자 재원을 위한 증세, 퇴직연금의 공적연금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 궁극적으로는 은퇴를 늦춰 연금 의존을 줄일 수 있는 노후의 재구성 등이다. 이 모두가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시대적 숙제이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은 미래 아이들의 몫이 아니라 우리에게 달려 있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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