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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다. 일례로 그리스 영웅 신화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면서 수많은 팬들을 거느려 왔다. 현대에 와서도 영웅의 인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꽤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 중에도 영웅을 다룬 것들이 많은 모양이다.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영웅들이 모여, 세계의 평화를 위해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나와 닮은 보통 사람들보다는 화려하고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영웅을 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영웅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꼭 닮은 보통 사람인 경우가 더 많았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수원보훈요양원에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만들어주신 여러 영웅들이 있다. 이분들을 영웅이라 칭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라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분들이 가진 사연을 들으면, 이분들이 왜 영웅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내가 큰소리로 “여보”라고 불러야만 대답을 할 수 있는 한 어르신은 옆에서 보면 연로한 나이 탓에 귀가 어두워진 노인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6·25전쟁에 참전해 고막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있는 가족을 항상 그리워하는 또 다른 어르신은 스물두 살에 6·25전쟁에 참가해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밥은 먹었느냐며 항상 안부를 묻는 어르신은 애국지사님의 배우자로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시던 분이다. 비록 지금의 모습은 나이가 들어 노쇠하지만, 젊은 날 온몸을 바쳐 나라를 지킨 평범하고 특별한 능력을 가지지 않은 현실 속 작은 영웅들인 것이다.

군가합창단이 25일 오전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6·25전쟁 제65주년 행사에서 "6·25의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군가합창단은 전직 국방장관을 비롯한 예비역 장성과 장교를 거친 관료, 교수 등이 추억을 노래하고 후배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출처 : 경향DB)


하지만 요즘 이런 ‘보다 현실적인 영웅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점점 흐려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6월6일은 제60회 현충일이었다. 1년에 한 번 생일처럼 방문객이 늘고 관심이 집중되는 날이지만 올해는 조용하기만 했다. 메르스 때문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이해한다. 눈으로 보이는 영웅담에 더 관심을 갖는 분위기 속에서 전후세대인 요즘 젊은이들에게 국가유공자들의 영웅적 면모를 얘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6·25전쟁이나 베트남전쟁에서의 부상 등으로 후유증을 겪고 있는 분들과 그 유가족은 여전히 우리 이웃이며, 그들 덕에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편히 살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시절의 아픔과 고통을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계신 분들을 매일 마주하며, 그들을 위한 국민들의 적은 관심과 국가의 넉넉지 않은 지원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 이웃의 국가유공자는 우리를 대신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우고 일한 작은 영웅들이다. 영화 속 영웅처럼 화려하거나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분들을 영웅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분들에 대한 존경은 어렵지 않다.

주말에 아이들과 또는 지인들과 가까운 보훈요양원에 찾아가 국가유공자를 찾아뵙고 위로하고, 말동무하는 자원봉사가 존경인 것이다.

6·25전쟁에 참가해 나라를 지킨 국가유공자들은 이제 대부분 80~90대가 되었다. 고령의 나이와 전쟁 후유증으로 건강 등 현실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보훈공단은 이러한 분들의 복지를 위해 전국 5개의 보훈병원과 6개의 요양원을 운영하며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의 지원은 아직도 부족하다. 특히 국가유공자들이 고령화되면서 수도권 보훈요양원의 경우 입소 대기자가 많아 모든 분들을 모실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연세가 많아 지금은 한없이 작은 모습의 영웅들이지만, 현실 속 작은 영웅들이 처한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적 관심과 함께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영웅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우리 이웃, 작은 영웅에 대한 감사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다.


이세기 | 보훈공단 수원보훈요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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