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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하는 제주~호남 해저고속전철 건설 논의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제주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항공편 중심인 제주의 교통여건을 고려할 때 증가하는 승객을 수용하기에는 공항 인프라가 한계에 이르렀고, 특히 잦은 태풍으로 인해 항공편 이용이 제한됨을 고려할 때 제주~호남 해저고속전철 건설은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승객 수송이 가능하다는 편의성 측면에서 상당히 매력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제주~호남 해저고속전철 건설은 편의성뿐만 아니라 진정한 가치평가에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논의 과정의 적절성이다. 해저고속전철 건설 논의 과정을 보면 전라남도의 일방적인 제안에 지나지 않는다. 개발사업은 상대방과의 이해관계가 일치했을 때 이루어진다. 특히 공공개발 사업의 경우 이해당사자 간의 긴밀한 논의와 협력 없이 추진되면, 공공사업보다는 정치적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제주는 이미 공항 인프라 개선을 통한 제주미래발전전략의 방향을 결정한 상황이어서 제주~호남 해저고속전철 논의 자체는 큰 관심이 될 수 없다.
한화호텔 & 리조트 ‘아쿠아플라넷 일산 해저터널 (출처 : 경향DB)
둘째, 사업의 경제성이다. 분석에 따르면 제주~호남 해저고속전철 사업은 최대 20조813억원이 소요되고, 사업기간이 14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는 대규모 토목공사다. 그리고 고속철도 유형에 따라 서울~제주 약 140분, 광주~제주 약 60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호남권을 제외한 수도권 혹은 영남권 이용객 입장에서는 비용과 소요시간을 고려할 때 오히려 항공편 이용이 편리할 수도 있어 사업성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실제로 제주~호남 해저고속철도 건설의 비용 대비 편익 비율(B/C) 분석 결과,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지침 적용 시에는 B/C가 0.71~0.78, 국토해양부의 교통시설 투자 평가 지침 적용 시에는 0.55~0.78로 B/C 기준치 1.0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해저고속전철 사업보다는 공항 인프라를 조속히 확대 구축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셋째, 제주의 장소적 가치에 대한 평가다. 제주도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세계자연유산 등재지역으로 평가받아, 자연환경과 경관의 가치가 큰 도서다. 사실 고속전철의 기본 목적은 이동시간을 단축해 생활의 편리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만일 제주~호남 해저고속전철이 건설된다면, 안정적인 교통수단을 통해 더욱 많은 관광객이 제주를 방문하겠지만, 1박2일 혹은 1일 관광 형태로 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궁극적으로 관광객 증가로 인한 환경부담이 증가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주의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반사이익은 호남권이 클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지속적으로 호남권에서 해저고속전철 건설을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섬은 섬다워야 한다. 제주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섬이자 생태계의 보고이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설한 해저고속전철이 육지와 이어지는 순간 제주도는 더 이상 섬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할 것이다. 이것이 더 큰 경제적 손실 아니겠는가! 21세기는 환경과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다. 편의성과 경제성에만 가치를 두는 사이, 이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진정한 장소의 가치, 삶의 가치가 상실되지 않는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김태일 |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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