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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지하철역의 모든 상업 광고를 없애겠다는 구상을 내놨다는 보도가 나왔다. 광고를 모두 없애고 예술작품을 전시해 ‘예술 역’으로 바꾸려는 것이 이유라 했다. 무분별한 성형 광고의 피로감을 발단으로 꼽았다.
지하철은 한 도시의 문화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공공공간이고 그곳에 걸리는 광고는 상업적 목적을 표방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이 그와 거리가 멀다면? 박 시장이 특단의 작심을 하기에 충분한 계기다. 문화예술 분야 전문가로서 ‘서울문화예술철도’를 위한 논의를 이끌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무분별한 상업 광고’에 과감한 혁신의 칼을 빼들겠다는 박 시장의 의지는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이런 시 차원의 개입을 “지하철역 광고 다 빼라”는 한마디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됐다.
도시철도 이용객은 하루 700만명이 넘는다. 1000만 서울시민의 70% 이상이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게 되면 시민 문화 수준 향상은 물론 도시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는 발상에서 ‘문화예술철도’의 구상이 시작됐다. 내외부 전문가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약 8개월간 논의 끝에 4년2개월에 걸쳐 시행할 ‘사전설계안’이 마련되었다. 그중 광고와 관련한 부분만을 요약하자면, ‘엄청난 문화 콘텐츠인 광고의 매체 방식을 기술 진보에 맞춰 혁신하고 콘텐츠 수준을 높여 사용자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문화예술적 경험을 창출하자’는 것이 구상의 핵심이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빼앗겨 광고 수입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수준 높은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유통되는 도시 차원의 창의적 생태계를 구축해, 지하철을 문화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광고와 연계한 먹거리를 창출하는 허브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광고란 꼭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 안에 숨어 있는 유휴공간을 발굴해 미술관이나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과정에 민간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접목시키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민간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운영 모델 도출을 위해 공간·매체·운영의 혁신도 계획 중이다.
문화예술철도 마스터플랜은 3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일시에 계획을 완성하고 무조건 실행에 옮기는 방식이 아니다. 단계별로 지속적으로 보완해 혁신을 위한 진화 과정을 사용자와 더불어 겪어가며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런던이나 브뤼셀, 나폴리, 스톡홀름 같은 ‘예술 역’을 만들겠다는 시장의 포부가 담긴 이번 발언이 오랜 시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고민한 내용을 온전히 전하기에 부족했을 수 있다. ‘사전설계안’에 대한 예정된 숙의 절차를 마치는 대로 시민과 이해관계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하는 공식적인 자리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서울시 취지를 이해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입장과 관점을 아울러 서울 도시철도의 미래에 지속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건 전문가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건 사용자인 시민의 몫이다. 시장의 생각이라도 지나치거나 부족한 부분은 지적하고 설득하여 시민과 도시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전문가의 책임이 더욱 무거워진다.
<이나미 | 홍익대 디자인콘텐츠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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