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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방경찰청은 10월1일부터 ‘퇴근 후 이성 하급자에 대한 사적 연락금지법’을 시행했다. 미투(#MeToo) 흐름 속에서 경찰이 솔선수범하여 성폭력 없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면서 동시에 ‘이성’이라는 전제가 있어 매우 우려스럽기도 하다. 2017년 6월 기준, 경찰 구성원 중 여성 비율은 10%를 조금 넘는다. 10명 중 1명만 ‘이성’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울산지방경찰청은 사정이 다를 수 있으나 전체 경찰 통계를 기준으로 지침을 적용하면 9명에게는 퇴근 후에도 사적 연락을 해도 되고 오로지 이성인 1명에게만 하지 않으면 된다.
10명 중 1명만을 분리하는 이 지침은 1명의 입장에서 배려일까 배제일까? 나의 우려 지점이다. 물론 ‘초급 여성 경찰 사이에 상급자의 업무시간 외 개인적인 연락을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이 지침의 배경에 있다. 현실적으로 ‘초급’이고 ‘여성’인 경우가 조직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이기에 그에 대해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방식과 의미로 조직 내에서 구성되느냐에 따라 ‘존중과 배려’가 될 수도 있고, 오히려 ‘차별과 배제, 혐오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더 많은 고민과 질문이 필요하다.
얼마 전 여러 사람이 차량 두 대로 이동할 일이 있었다. 일행 중에 기관장과 기관 직원이 함께 있었다. 기관장과 나를 포함한 몇은 그 직원을 배려한답시고 기관장과 같은 차에 타라고 권했다. 그런데 직원은 다른 차를 선택했다. 순간 의아했으나 직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차를 타서야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은 저마다 기관장과 함께 차를 탔다 겪었던 불편함을 토로했다. 이구동성으로 상사와 함께 있다는 것은 상사가 권위적인지 아닌지, 이성·동성을 떠나 늘 긴장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얘기를 들으며 늘 상사에 대해 오감을 곤두세워야 하는 위치의 사람들이 지니는 감각에 대해 둔감했음을 깨달았다.
계급·지위에 따른 위계질서가 뚜렷한 경찰 조직의 특성상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거부하기 힘든 것이 상사의 요구다. 명령이든 부탁이든 모두 이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동일하다. 위치의 문제이고 조직문화의 문제다. 또한 성별이 교차적으로 작동하는 문제다. 그렇기에 문제를 대할 때 ‘초급’ ‘여성’이 말했으니까에 초점을 두기 이전에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국가적으로 적정한 근로시간, 휴식시간을 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저녁이 있는 삶’은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여성이 아니라 동료 경찰이라는 감각은 왜 중요한지, 현실적 어려움에도 지향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부터 바꿔갈 것인지와 같은 질문 말이다. 질문을 바꾸면 소수 누군가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누가 희생하거나 다수가 불편을 감수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보인다. 그것이 변화의 출발이고 함께 변화해 가는 과정이다.
경찰청은 최근 과거의 과오를 딛고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어느 부처보다 가장 선도적으로 성평등정책담당관을 신설하고 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울산지방경찰청의 지침도 이런 긍정적 변화의 과정임을 알고 있다. 경찰청이 성평등한 조직문화라는 결실을 잘 맺어가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 울산지방경찰청 지침이 ‘이성’이라는 전제를 빼고 모두의 ‘저녁 있는 삶’으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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